도심서 산봉우리 보기는 ‘별따기’
도심서 산봉우리 보기는 ‘별따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6.30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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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살린 도시디자인
한삼건 교수의 도시이야기
▲ 삼산 시가지에서 본 신선산.

지난 글에 이어 울산의 저명 산과 봉우리를 도시디자인에 이용할 방안을 생각해 보기 위해 먼저 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외국 도시의 사례를 살펴보면 여러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후지산을 안고 있는 후지미야시(富士宮市)는 1995년에 조례제정을 통해서 ‘후지산 등의 경관과 조망보전’ 방향을 마련하고 이어서 1997년에 도시경관 형성 유도기준을 작성했는데, 후지산의 2천500m 이상 부분에 대한 조망을 확보하도록 했다. 고베와 교토처럼 배후에 산이 있거나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경우도 건축물 높이 규제를 통한 배후 산지 스카이라인 보호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도심에서 배후 산지 조망을 지키는 규정은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시가 좋은 예다. 덴버시는 ‘산지조망 조례’를 만들어 로키산맥을 조망하는 주요 조망점 13개소를 선정해 관리하고 있다. 하와이의 경우 와이키키 해변에서 보이는 다이아몬드 헤드 조망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공중에 뷰콘(view-cone)이라는 깔때기 모양의 건축 불허구간을 설정하고 있다. 이런 조망을 지키는 제도가 잘된 나라로는 프랑스를 빼 놓을 수 없다. 특히 파리의 후조(fuseaux)규제가 유명한데, 한 방향에서 조망보호 대상을 바라볼 때, 도로 양 끝단의 조망보호 대상을 바라볼 때, 높은 곳에서 시가지를 내려다 볼 때 조망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가상 입체 투시체를 만들어 규제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 조망의 대상은 저명 건축물이나 역사적인 장소이다. 몽마르뜨르 언덕과 사크레쾨르 대사원이 한 가지 예가 된다.

산은 도시경관에서 도심 내부에서 주로 형성되는 근(近)경관이나, 중(中)경관의 대상이기 보다는 원(遠)경관의 대상이 된다. 산과 도시간의 이런 관계는 예로부터 이어져 왔다. 우리 선인들은 산의 뾰족한 모양과 공중으로 솟아 있는 그 높이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 혹은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재로 인식하거나 산을 신과 같은 절대자에 빗대거나 신령한 사람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또 산이 도시를 지켜주는 존재라는 관념도 보이는데 특정 지역에서 가장 높거나 산세가 좋고 이름난 산을 고을을 진호하는 대상으로 보거나 상징으로 삼기도 했다. 울산의 진산을 무룡산이라고 한 최초의 기록은 조선초기인 1425년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다. 진산이란 한 고을을 지켜주는 산이다. 진산 개념 이외에도 수령이 국왕을 대행해 제사를 지낸 우불산에 대한 기록도 같은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후기인 1749년에 편찬된 학성지 ‘산천’조에는 무리용산(무룡산)을 울주의 진산, 동대산은 진산일대를 통칭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달천산, 문수산, 원적산, 불광산, 오산(삼산) 등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지리지인 흥려승람(1937)에도 ‘무룡산이 진산인데 세상에서 동대산이라 한다’고 했고, 문수산, 원적산(천성산), 불광산(대운산), 오산(삼산), 우불산, 영축산(靈鷲山-문수산 동록), 저두산, 운암산, 태봉산, 화장산, 연화산, 백운산, 치술령, 순등산, 마골산, 달천산 등을 소개하고 있다. 시대가 내려갈수록 산이 보다 자세하게 소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흥려승람에서 주목할 것은 ‘함월산-본부주산, 황방산-병영주산’이라는 내용이다. 고을 진산과 별도로 풍수에서 말하는 주산으로 중구 함월산과 황방산을 들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 고을 수령이 비를 비는 기우제도 문수산, 우불산, 고헌산, 정족산 등에서 지냈다고 적고 있다.

▲ 남산루에서 본 무룡산이 고층건물들로 가려져 있다.

이런 울산의 산들은 초등학교 교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필자의 모교인 양사초등학교 교가는 ‘태화강 굽이쳐서 금옥평야 벌어진 곳 함월산 서리어서 공업도시 열린 곳’으로 시작된다. 최두출 선생이 작사자인 울산초등학교 교가도 ‘함월산 줄기찬 품안에 안긴’이라는 구절이 있다. 박관수 선생이 작사한 제일중학교 교가는 ‘등에 업은 문수봉 지혜를 타고 품에 안은 처용암 재주를 받아’라는 가사이며, 김춘수 선생이 지은 울산공업고등학교 교가는 ‘태백의 정기 뻗어 문수산에 서리고’로 시작한다.

필자가 지난 2001년에 울산지역 79개 학교 교가를 조사해서 분석했더니 태백산이 15개 교, 무룡산과 문수산이 각각 12개 교가에서 보였다. 이외에 중구는 함월산, 황방산, 남구는 은월봉, 동구는 목장산, 동축산, 마골산, 봉화산, 북구는 동대산, 순금산이 확인됐다. 울주군은 치술령, 국수봉, 고헌산, 가지산, 신불산, 간월봉, 정족산, 운암산, 대운산, 천성산 등이 교가에 등장했다. 대부분 앞서 소개한 흥려승람 같은 지리지의 산과 중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학교는 대부분 개교한지 수 십년에서 백년을 넘은 곳이다. 수천명에 이르는 각 학교 졸업생들이 이런 교가를 3년씩, 6년씩 부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은 어떤 이미지로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됐을까 생각해 보면 산이 가진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런데 우리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던 울산의 산들이 오늘날 급격한 산업화와 이에 따른 도시 성장으로 인해 산을 그저 ‘등산하는 곳’ 정도로 바라보게 됐다. 산을 단순한 땅덩어리로 보거나 금전 환원가치로만 보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첫째, 산의 진정한 가치를 의식하지 못한 도시계획 설정이며, 둘째는 산을 가리는 건축물의 배치이다. 중구 구시가지는 사실 조선시대의 도시구조를 기초로 해서 일제강점기 때 개설된 도로가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울산은 앞서 본 것처럼 함월산을 주산으로 배경에 두고 신선산을 안산으로 삼는 등 철저하게 산봉우리를 고려한 도시계획을 지켰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3년에 기공식을 가진 인구 50만 공업도시 계획은 번영사거리 주변에 계획된 기차 정거장이 도시계획의 기준이 됐기 때문에 산에 대한 배려는 없었고 도로축마저도 틀어지고 말았다. 이런 도시구조를 이어 받은 지금의 울산시는 적어도 중구와 남구의 경우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함월산, 신선산, 돗질산, 무룡산, 문수산 등은 겹겹이 막혀 버렸고, 삼산은 아예 완전히 깎여서 흔적도 찾기 어렵다.

물론 울산 같은 대도시의 경우 높은 건물이 들어서는 것은 막을 수 없고, 그래서 시내에서 도심 주변의 모든 산이 바라보이게 하는 것은 쉽지 만은 않다. 그러나 이것도 현행 제도에서 상업지역 같은 고층 건물이 들어설 용도지역 범위를 고민하고, 최고고도 지구 등을 지정해서 지켜낼 수는 있다. 또한 간선 도로망 역시도 봉우리와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달릴 수 있도록 설정할 수 있다. 이 경우 도시를 알기 쉽게 하고, 산의 푸르름을 도심으로 이끌어 내는 효과가 기대된다. 나아가서 지역의 역사와 이야기가 묻어 있는 산을 항상 가까이 함으로써 자기 고장에 대한 이해와 자긍심도 깊어지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주거지역의 경우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산봉우리를 가리는 현상이 상업지역보다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20~30층이 넘는 대단지 고층 아파트가 도심 외곽선을 차지하면서 산을 가리는 거대한 인공 벽체가 된지 오래다. 한술 더 떠서 공공시설 가운데도 산을 가리거나 도심의 산봉우리 스카이라인을 파괴하는 것이 많다. 현재 신축 중인 옥동 법원청사는 남산스카이라인 파괴에 가세하고 있고, 울주군 웅촌지역에서는 산의 5부 능선 이상 높은 곳에 늘어선 공장지대로 인해 풍경 파괴가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잘못된 도시디자인과 심화되는 도시화 현상 속에서 우리 사는 곳,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산봉우리가 보이지 않으면 아무리 교가에서 산 이름을 불러대도 산은 실체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내 고장을 기억하게 하는 산을 모르는 시민이 늘어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잘못된 도시디자인으로 건물이 산봉우리를 모두 가려 버린다면 울산의 특징도 함께 사라진다. 산을 끼고 있는 외국의 많은 도시들이 그토록 산악조망을 지키려고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삼건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울산교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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