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함과 태평함 사이
초조함과 태평함 사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6.1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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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느긋해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씩 무게를 더해가는 세월 앞에서 중량만큼 가라앉기보다 무시로 술렁이는 마음을 추스르기에도 힘이 든다.

언제부턴가 앞면을 미처 보기도 전에 뒷모습을 보이며 달아나는 시간이라는 괴물을 뒤 쫓고 있는 나를 본다. 그럴수록 시간의 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급기야 꽁무니를 붙잡기에도 벅차진다.

스러지는 계절만큼이나 무상해지는 마음을 가요의 한 구절에서 발견하는 횟수가 잦아지고 때론 무릎을 칠적도 있다. 그렇게 자신의 무게에 짓눌리다 어느 날 문득 딸의 나이가 서른을 훌쩍 넘겼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란다. 평소 남의 일처럼 생각해오던 일이 막상 내 문제로 목전에 닥치니, 황당함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식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도무지 편안해질 수가 없는 것이 부모마음인가 보다.

한 지붕 아래 살아도 막상 딸과 진중한 얘기를 나눌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가끔 함께 동네를 한 바퀴 돌때나 자동차를 같이 탈적에야 비로소 깊이 묻어두었던 속내를 드러낸다. 하지만 이런저런 말끝에 마지막 귀착점은 결혼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나 혼자만 안달이다. 정작 당사자는 그렇게 태평할 수가 없다. 하긴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던 터다.

어쩌다 들어오는 선 자리도 이런저런 핑계로 시간만 끌기 일쑤니 정말 무슨 묘책이 없을까 고민에 빠진다. 머리가 굵어지니 자식이라 한들 어미 마음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얼마 전에도 괜찮은 혼처가 있어 벼르고 별러 선을 보게 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지만 ‘역시나’다. 그러고 보면 요즘의 선남선녀들은 사람을 만나는 일에도 큰 기대나 두근거림 같은 것이 없어 보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할 중요한 무엇인가가 빠진 느낌이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없다는 옛말처럼 결혼 조건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다. 인연이 닿아야 한다고들 하지만 또 현실을 전혀 안 따질 수 없는 게 결혼이다. 게다가 두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야하는데 그것이 그리 쉽지가 않다. 가만 보면 세상은 넓고 언제라도 결혼할 사람은 많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엄마, 설마 내가 사람 못 만나 결혼 못할까. 아이고 징해라~~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 제발 더 늦추지 말고 결혼 좀 해라. 엄마는... 그래도 일단 ‘필’이 꽂혀야지, 어떻게 평생의 반려자를 대충 고를 수가 있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미 마음은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다. 딸의 신랑감이 어디에 꼭꼭 숨었는지 할 수만 있다면 사람을 동원해서라도 찾고 싶다. 아니면 차라리 결혼에 대한 지론을 바꾸어야 마음이 편해질까. 하지만 그게 그리 쉽게 되지를 않는다. 생각해 보면 가야할 길이 멀고도 먼 인생길이 아닌가. 그저 수수하게 남들 사는 것처럼 살아주길 바라는 이런 마음조차 대단한 사치일 뿐이니... 억지로 안 되는 일에 하릴없이 기운을 빼다가 제풀에 지친다.

어제 일이 옛일이 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삼십여 년 전의 일은 선사시대의 화석만큼이나 아득하다. 내가 결혼을 하던 그 시절에는 대부분의 남녀가 한 번 만나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불변의 원칙이라도 되는 듯 끝까지 고수하던 순애보의 시절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사춘기 때 꿈처럼 만나 선 한 번 못 보고 한 결혼은 늘 안타까움을 남겼다. 세상에 대한 올바른 기준이 없는 생활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사랑과 현실은 그렇게 달랐다.

그런 조건에서 본다면 아직도 머무적거리기만 하는 딸에게 조바심치는 내 모습은 영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래 세상을 더 알고 꼭 ‘이 사람’ 이라는 생각이 들 때 하는 결혼이 후회도 덜 할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의 속까지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두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분명 상대의 마음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딸아이의 유니폼을 다림질하면서 느긋한 체, 태평한 체 짓는 웃음으로 초조함을 지그시 눌러 앉힌다. 부디 하루빨리 좋은 운명의 사람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어미의 마음이 무럭무럭 김을 피워 올리는 다림질속으로 스며든다.

<전수안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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