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이의 꿈
인순이의 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4.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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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혼혈가수 인순이(56·본명 김인순·해밀학교 이사장)가 부른 ‘거위의 꿈’ 노랫말 중 일부다. 그녀에겐 노래인생 35년 내내 꾸어온 꿈이 있었다.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그녀의 꿈은 마침내 이뤄진다. 지난 11일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보살피는 기숙형 대안학교 ‘해밀’이 강원도 홍천군 남면 명동리 농촌체험장 터에서 문을 연 것이다. 이날 ‘해밀학교 개교식 및 제1회 입학식’엔 마을주민과 각계의 저명인사 여럿이 참석했다. 강원도지사, 홍천군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 홀트아동복지회 회장, 강원대 총장, 그리고 가수 패티김, 정훈희, 유열도 축하의 잔을 같이 들었다.

‘해밀’이란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이 낱말 속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인순이 자신이 겪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고 밝은 꿈과 희망을 안고 자라기를 바라는, 고우면서도 다부진 그녀의 소망이 담겨 있다. 특히 개교식 환영사는 그녀의 간절한 소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내가 겪었던 어려움, 외로움뿐만 아니라 사랑, 격려, 위로를 나와 같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내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아이들도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비온 뒤 맑게 갠 하늘’이란 뜻의 ‘해밀’이란 이름처럼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밝게 살아갈 수 있게 교육하겠습니다.”

개교 사흘 뒤 TV조선 인터뷰에서도 그녀는 가슴 뭉클한 몇 마디를 남긴다. “어렸을 때 정체성을 찾고 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것, 시간이 참 오래 걸렸습니다. … 앞으론 정말 이런 학교가 없이, 또 ‘다문화’란 단어가 없이, 모두 하나로 어우러져 살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해밀학교 설립 준비는 2011년 4월부터 시작됐다. 그 일은 인순이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사)인순이와 좋은 사람들’이 도맡았다. ‘다문화 케어·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다문화가정 아동 지원을 위한 협약’도 맺었다.

해밀학교는 중·고교 과정이 통합된 6년제 학교다. 중도입국 자녀를 포함해 다문화가정 자녀 가운데 중학생 또래의 여학생을 우선 받아들인다. 다문화가정 초등학생의 중학교 진학률이 너무 떨어지고 중도에 데려온 자녀들이 교육 받을 곳이 없는 현실을 감안한 배려다.

기숙사비는 실비로 받지만 입학금, 등록금, 교복비 등 다른 비용은 전액 무료다. 국·영·수 등 보통교과 외에 프로젝트, 자유여행, 예술문화, 이중언어와 같은 특성화교과 수업을 진행하고 지역 봉사, 유적 답사, 문화 체험을 통해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모둠활동’도 지원한다.

농촌체험시설로 이용하던 한옥과 부대시설을 리모델링해서 문을 연 이 학교는 그러나 아직은 미흡한 구석이 적지 않다. 2∼3년 안에 정식 인가를 받는다지만 아직은 ‘미인가’ 상태다. 학생은 6명뿐이고 교직원은 교사 5명을 합쳐 9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구약성서 욥기 8장 7절의 말씀(“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대로 미완의 꿈이 온전히 이뤄질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해밀학교와는 한참 거리가 있지만 ‘다문화 대안학교’ 설립 움직임은 울산에서도 있었다. 울산시의회 전반기 교육위원회가 주역이었다. 교육위원들은 대안학교 설립의 대안을 찾기 위해 외지의 대안학교도 둘러보았고 시교육청과의 대화도 시도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물 건너 간’ 격이 되고 말았다.

한 교육위원은 그 이유를 두고 이런 주장을 편다. “아무리 좋은 대안이 있다 하더라도 집행부 수장의 의지가 강력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어떠한 꿈도 이뤄낼 수 없습니다.”

인순이의 꿈 해밀학교의 개교는 그녀 개인의 의지와 재산이 가능케 했다고 해서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울산에서 ‘제2의 인순이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 아름답고 숭고한 일에 뜻 있는 이들이 앞장서고 교육당국과 지자체, 지역 기업들이 힘을 보탠다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꿈은 언젠가는 이뤄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인순이의 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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