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를 걱정해?
누가 누구를 걱정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4.0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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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다소 차가운 봄날이었습니다. 집 앞 사거리에서 어지러이 날리는 머리칼을 포기한 채 신호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큰 모자를 쓰고 그 모자를 흰 수건으로 덮은 깡마른 체구의 여인이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손수레에 폐지를 한가득 싣고 지나갔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이가 꽤나 있어 보이는 할머니였습니다. 살짝 밀어드릴까 하다가 문득 어떤 생각에 내민 손이 부끄러워 얼른 주머니 속으로 주워 담았습니다.

얼마 전 몇 분의 어른들과 천주교 역사를 조명하는 특별전을 관람하기 위해 언양 천전리에 위치한 대곡 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대곡박물관은 대충 훑어봐도 지어진 규모에 비해 상당히 짜임새 있게 구성된 듯 보였습니다. 통상 박물관이라 하면 인적이 드문, 한산한, 커다란 회색건물을 연상하게 되는데 그에 비해선 참 다정한 느낌이 드는 것이 대곡의 첫인상이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천주교 특별전에 대한 연이은 호평 때문인지 방문객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박물관 곳곳에 전시된 오래된 유물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습니다.

세상의 대부분이 변하거나 변질 되지만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시간이라는 사실에 매우 공감합니다. 또 그 시간의 화살위에서 때로는 묵묵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형태를 바꾸며 흘러오고 있는 것이 역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은 유물이 발견되면 방사능 탄소연대 측정으로 좀 더 정확한 연대와 시기를 추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끔 미디어를 통해 수천 년 전 미라를 만날 때면 과거와의 만남이 소름끼칠 정도로 신기합니다.

이렇게 역사를 생각하다보면 무엇보다 사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 곳곳의 유명한 건축물과 예술품, 수억 원을 호가하는 미술품, 세기를 거슬러 읽히는 인문학도 그 중심에는 그것을 이끈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큰 범주에선 한 나라, 세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무궁한 우주의 역사가 있으며, 작은 범주에선 사람 즉, 개인의 역사가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개인의 역사는 추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요. 흔히 어떤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된다고들 합니다. 그것은 아마 인간을 판단하는 것이 탄소연대측정법 등의 방식으로 추정하는 역사와 확연히 다르기 때문 일 것입니다. 가끔 역학 중 사주를 통해 추정을 시도하지만 개인의 역사는 전 후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는 본인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심을 다하는 사람인지 온통 쭉정이 뿐인지, 행복한지 혹은 불행한지를 다른 이의 판단과 추측으로 결말짓는다는 게 턱없는 짓 일지도 모릅니다.

언뜻 본 손수레를 끌고 가는 나이 든 여인의 얼굴에는 의연함이 있었습니다. 굳게 다문 입술에선 삶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손수레를 밀어드리려 했던 나의 마음이 조건 반사라는, 착한 가면을 쓴 또 다른 사치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확 달아 올랐던 게 사실입니다. 고달픔의 잣대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왜 힘든 일을 하면 삶조차 힘이 들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요.

상상을 합니다. 힘들게 폐지를 줍지만 그 모은 폐지를 돈으로 바꾸고 그 돈으로 무언가를 삽니다. 그리고 집으로 발길을 향합니다. 집에는 자식들이 팽개쳐 놓은 올망졸망한 손자들이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병들어 누워있는, 거동이 불편한 남편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장면을 바꿔 행복한 상상을 시작합니다. 손자들은 할머니가 들어오면 달려가 반갑게 안깁니다. 그녀의 가녀린 팔에 매달려 하루의 노고를 잊게 만듭니다. 힘들게 일어나 앉은 남편은 연신 손을 쓰다듬으며 감사와 용서의 마음을 나눕니다. 집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지은 따듯한 밥은 소박한 찬이지만 그녀에겐 그곳에 머무는 것이 행복입니다. 이런 찰나적 상상이 사거리 신호등의 신호가 채 바뀌기도 전에 끝이 납니다. 왜 우리는 좋은 차에 좋은 집, 돈 잘 버는 남편과 고상한 아내, 그리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왜 이런 편견의 늪에서 늘 허우적거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점점 멀어져 갑니다. 그러다가 문득 ‘누가 누구를 걱정하고 있누? 너 자신이나 걱정하지?’라는 생각이 번뜻 떠 오릅니다. 짧은 상상이 인도한 마음의 소리인 셈입니다. 행복이 머무는 곳은 어쩌면 상상을 초월한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용히 심장에 스밉니다.

오양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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