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자와 언어학자의 악수
의학자와 언어학자의 악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4.0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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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언어학자와 의학자가 머리를 맞대고 ‘아름다운 우리말 의학 전문용어 만들기’란 책을 펴냈다. 가톨릭대 해부학교실 정인혁 교수와 서울의대 피부과 은희철 교수, 이화여대 인문과학부 송영빈 교수 등 권위자 3인이다.

이들이 전문용어 다듬기에 같이 나선 것은 “전문용어가 사회와 동떨어진 소수 학자의 전유물이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아직도 ‘그들만의 전문용어’를 별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다. 의협신문의 어느 기자는 최근 “그냥 ‘비늘증’이라 하면 될 것을 의사들은 굳이 ‘이치티오시스 벌가리스’ 또는 ‘심상성 어린선(尋常性魚鱗癬)’이라 한다”면서 “영어는 물론 한자어조차 옥편을 들고서야 겨우 뜻을 알아낼 정도”라고 했다.

공동저자들은 ‘좌창(acne)’을 ‘여드름’으로, ‘단골(短骨)’을 ‘짧은뼈’로, ‘와우(蝸牛)’를 ‘달팽이’로, ‘절창(切瘡)’을 ‘베인 상처’로 바꿔 쓰자고 제안했다. 일일이 옳은 말이다.

전문용어를 쉽고 아름다운 말로 바꿔 쓰려는 움직임은 의학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법조계를 비롯한 공직사회에서도 일찌감치 그런 노력을 기울여 왔다. 문제는,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하더라도 아랫사람들에게까지 속속들이 미치지 않는다면 그 보람이 반감된다는 데 있다.

우리 지역의 경찰이나 관공서도 예외가 아니다. 일제의 찌꺼기인 ‘절취(훔치기)’,‘편취(가로채기)’,‘강취(강제로 빼앗기)’ 같은 용어들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얼마 전 한 보도자료에서 ‘소상’이란 낯선 낱말을 버젓이 사용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낱말이 ‘(물고기가 강을) 거슬러 오른다’는 뜻의 한자말 ‘遡上’이란 사실을 깨닫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전문직종이나 관공서에서 쓰는 전문용어 가운데 일본어, 한자말, 외래어가 그 바탕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용어들이 뜻 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하나둘씩 아름답고 쉬운 우리말로 바뀌어간다는 사실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공동저자 세 분의 노력도 그런 의미에서 뜨거운 박수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울산에서도 그 맥을 이어 ‘전문용어 다듬어 쓰기’ 움직임이 돌림병처럼 번지기를 기대한다. 이 일에 울산의 언어학자들도 동참해주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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