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놓인 처용
위기에 놓인 처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3.0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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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은 지금 아내에 이어 처용암까지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다.

처용은 동해용왕과 함께 처용암에 등장해 신라왕을 따라 경주에 간 설화의 주인공이다. 역신에게 아내를 뺏기고도 가무를 한 인물이다. 이 설화는 국문학사에 독보적 위치를 지니면서 숱한 이야기를 생산하고 있다. 논문만 300여편이고 앞으로 스토리텔링으로 거듭날 요소가 무궁무진하다.

얼마전 대영박물관에서 발견된 이슬람권의 대서사시 ‘쿠시나메’에 처용의 모습이 비춰져 있다는 설이 제기됐다. 놀랍고 흥미진진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조만간 ‘쿠시나메’가 번역되면 처용은 국제적으로 뜨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국내외 관광객이 처용암에 올수 있다.

처용암 유적은 바야흐로 국제적 관점에서 조망될수 있는 큰 이야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처용암을 보러갔다가 실망을 넘어 화가 치밀었다.

처용암은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 4호다. 일찌감치 유적가치를 인정받았지만 그 관리는 수준이하 였다. 시내에서 처용암으로 가는 길 이름은 ‘처용로’다. 천년설화의 거점으로 들어가는 길이지만 주변은 온갖 공장시설로 어지러웠다. 처용암 가까이는 더 심했다. 어떤 이는 ‘폐허미’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폐허미는 더러운 환경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유일무이한 유적지가 이렇게 홀대받는 일이 기이할 정도였다.

처용암을 마주보는 해변에는 처용가를 기리는 비가 세워져있다. 1985년 황패강, 박두진, 손보기, 여운필, 심봉근, 이기백 등 국문학과 고고학 분야 저명한 학자들이 이름을 올렸다.

비석 설립자 명단에는 심완구 전 시장과 사진작가 서진길씨 등 울산사람 이름도 있다. 어지러운 주변경관을 보면 비석을 세운 그들의 뜻이 어디로 갔는지 의문이었다.

공장시설에 둘러싸여 그 가치를 잃어 가는 처용암. 벽사진경의 표시인 ‘처용형상’을 처용암 인근 각종 공장시설 문에 붙여야 할 판국이다.<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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