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는 인공숲 사투리는 천연숲”
“표준어는 인공숲 사투리는 천연숲”
  • 김잠출 기자
  • 승인 2013.02.1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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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방언사전 집필 신기상 박사
울산 말은 신라 후속어… 2만여 어휘 수록 10월 출판
▲ 울주군 웅촌 출신의 신기상 박사가 20여년간 2만여개의 어휘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울산방언사전’을 오는 10월 편찬할 계획이다.
어머니가 등목을 하고 나온 아들에게 ‘깨꿈채?’라고 묻는다. 제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괜히 바쁜척하면 ’와 저리 분답노‘라는 지적을 받는다. 풋살구를 한 입 깨문 할머니는 ’아이고 새구라바래이‘라고 얼굴을 찡그리고 장마철에는 ‘꾸무리‘한 날씨가 잦다. 이게 울산 토속말이다.

오는 10월이면 ‘울산방언사전’이 첫 출판된다. 공업화 이전인 1960년대까지 흔히 쓰던 울산 방언을 집대성하는 것이다. 울산방언을 20여년간 채록해 온 울주군 웅촌 출신의 신기상 박사(68·서울)가 책임자다. 신박사는 1963년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초중고 교사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울산방언사전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책 내용을 미리 알아보기 위해 신박사와 이메일과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방언사전 편찬의 필요성은 무엇인가?

“울산의 많은 문화재 중에서 으뜸인 문화재는 울산방언이다. 태화강을 되살리고 십리 대숲과 반구대 암각화를 보전하는 일에 못지않게 울산방언을 보전(保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미 제주, 강릉, 여수, 남해, 안동, 경주, 경북 동남부 등 지방마다 방언사전이 다 나와 있다. 울산도 지금 아니면 방언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

방언은 지금 거의 사용되지 않는 어휘들이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고령층에서는 아직도 방언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현재의 오지(奧地) 고령자라해도 온전히 50·60년대 울산방언만으로 대화하는 분은 드물다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 표준어를 비롯한 외지 말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 것인데 방언은 질이 낮거나 품격이 없는게 아니다. 따라서 방언사용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안다면 방언을 널리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교통의 발달·대중매체 보급으로 방언색깔이 옅어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래도 방언을 사용해야 한다는 뜻인가?

“표준어 교육의 확대, 교통의 발달, 방송의 발달, 전국적인 주민이동 등으로 방언색이 희박해지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현실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방언의 특성은 급속히 희박해질 것이다. 그래서 문화재 보전 차원에서 방언사전 간행이 시급하다는 말이다. 표준어는 인공조림이고 방언은 자연 그대로의 무질서한 숲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신박사는 지난 20여년 동안 울산지방을 돌아다니며 채록한 울산방언 중에서 1만 4천개나 2만여개의 어휘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울산방언사전’에 우선 실을 계획이다. 한 시대의 울산 말의 원형을 보존하게 될 것으로 평가할만 하다.

울산방언의 특징은 무엇인가?

“울산 말은 경주와 인접 언어권으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도읍지였고 신라어는 현재 한국어의 근간이 되는 언어인데 신라어의 핵심지역으로 1960년 이전까지 외지언어에 영향을 덜 받았기 때문에 울산방언은 신라어의 후속어로서 가치가 있다.”

이번에 편찬하는 방언사전에 대해 소개한다면?

“국판 950쪽 정도로 준비 중인데 현재 기본 작업은 마쳤지만 사전작업은 점 하나 기호 하나가 까다로운 것이라서 사전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작업은 이제 겨우 시작단계라 할 수 있다. 방언은 실제 사용해야 가치가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른 방언의 용례 등 예문을 풍부하게 사용할 계획이다.”

같은 울산도 동서남북·해안·내륙에 따라 차이 있나?

“산간, 해안, 철도변 등 환경과 직업에 따른 독특한 방언이 있고, 식물, 어류, 곤충 등 전문 분야의 독특한 방언도 있다. 이번 사전에 수록되는 울산방언은 보통 대화에 쓰이는 일상적인 언어로 동서남북에 따른 차이는 없다. 물론 울산방언은 고저장단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 ‘가가가가가’를 표준어의 장단만으로 발음해서는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 울산방언의 고저장단이 그래서 중요하다.”

서울의 한 다방에서 울산 사람들이 종업원에게 ‘마카 커피 도’`라고 주문했다. 종업원은 모카커피를 잘못 발음한 줄알았겠지만 울산 사람의 뜻은 그게 아니다. 일행 모두 커피를 주문하겠다는 말이다.

이처럼 고향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고향 냄새가 물씬 배어 있는 울산방언이 지금의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져가는 것이 무척 아쉽다.

방언은 고저장단과 음가가 중요한데 오디오북이 있도록 하면 좋을텐데...

“좋은 아이디어다. 이번엔 사전만 내고 과제로 두겠다.”

대학 졸업 후 50년째 서울에서 살고 계시는데 아직도 울산방언을 일상어로 사용하시는지?

“서울에서 초중등 교사와 대학교수로 살아 왔기에 직업 특성상 표준어를 쓰지만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고향 말을 많이 쓰고 있다. 그게 편하기도 하지만 연구자로서 고향의 방언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도 포함돼 있다.”

신박사는 초등학교 교사 때 멋진 표준어를 구사하기 위해 표준어와 자신의 말을 견주어 정리하고 자료를 모으다가 방언채집을 시작하면서 연구로 이어졌다고 한다.

방언 자료 수집은 어떻게 하시는지?

“처음에는 ‘방언조사지’와 녹음기를 이용했으나 지금은 새로운 것이 없어 녹음기를 쓰는 대신 자연스럽게 대화를 많이 한다. 5일장에 가면 시골 노인들의 대화를 많이 들을 수 있고 자연스럽게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다양한 울산방언을 쉽게 얻을 수 있어 가장 선호하는 방법이다.”

신박사는 이번 사전이 학교의 국어교육과 국어사 연구나 방언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작가들이 울산방언을 잘 구사해 문학적 향취를 더욱 높인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희망을 전했다.

글·사진=김잠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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