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 이익보다 시간·공간·자연과의 ‘조화’ 중요
눈 앞 이익보다 시간·공간·자연과의 ‘조화’ 중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2.17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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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자산 시민편리 조화시켜 보존·활용
독일 프랑스 일본은 기능·역사 잘 지켜
학성객사 복원과 미술관 건립 함께 가야
한삼건 교수의 도시이야기

사람들이 도시를 바라볼 때 강한 이미지를 받는 건축물은 보통 그 스케일이 아주 크거나, 튀는 모양이나 색채를 사용했거나 아름다운 경우 등이다. 또 하나는 비록 크기는 작더라도 많이 모여 있기 때문에 강한 이미지를 주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그 이미지가 꼭 좋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멋있고, 아름다운 도시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건축물이 어떻게 설계되어야 할까, 또 어디에 입지하면 더 좋은 이미지를 줄까.

▲ 바로크 양식 건축물과 아름다운 자연풍광으로 유명한 독일 하이델베르크.

도시의 기능·역사성·자연을 지킨 재건축

먼저, 사례를 찾아보자. 도시디자인이 잘 된 도시, 지구인이 아름답다고 평가하는 그런 도시를 살펴보면 무언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학도시로 유명한 독일 하이델베르크는 큰 골짜기에 형성되어 네카어강이 시가지를 관통하여 흐르고 산이 가깝다. 강변의 비교적 좁고 긴 골짜기는 중세분위기의 도시구조 위에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아름다운데, 높은 언덕위에 우뚝 솟은 하이델베르크성은 붉은 사암으로 지어져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이 도시가 특히 우리나라 사람에게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이미지로 남게 된 것은 뮤지컬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The Student Prince)’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해외여행이 먼 나라 이야기이던 그 시절, 황태자와 하숙집 아가씨의 로맨스와 아름다운 노래, 그리고 영상으로 본 먼 이국 도시 하이델베르크는 낭만덩어리 그 자체였다.

중세도시에서 근대도시로 성공적인 탈바꿈을 한 프랑스 수도 파리는 문화 예술과 관련된 소프트 파워와 컨텐츠 파워가 단연 압도적이다. 하지만 이런 평가에 파리의 건축물과 도시디자인도 한 몫을 한다는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 신·구 건물이 조화를 이룬 프랑스 파리

오늘날 파리 중심지의 모습은 1853년부터 시작된 파리재개발 사업의 결과물이다. 나폴레옹 3세가 지시하고 오스만 파리시장이 엄청난 사업비를 투입해서 추진한 도시재개발 사업의 결과 파리는 중세도시에서 근대도시로 모습을 일신했고, 상하수도, 공원녹지, 기능적인 도로, 오스만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 많은 공공 문화시설 등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었고, 사업이 끝난 지 백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도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다. 물론 후손들이 받은 선물은 도시 외관뿐만 아니라 긍지와 자부심도 함께였다.

동양의 유명한 역사도시 가운데 하나인 일본 교토(京都)는 필자가 유학생활을 했던 곳인데, 1천100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19세기 중엽에 일으킨 메이지유신으로 왕정복고가 이루어지고 막부가 해체되면서 ‘에도(江戶)’에서 이름을 바꾼 도쿄(東京)로 수도기능이 옮겨가면서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 전통 목조건물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 교토

천황의 궁궐과 귀족들의 저택이 즐비하고, 전통적인 목조 기와건물이 시가지를 덮고 있던 교토도 근대화와 고도경제성장을 겪으면서 벌레 먹은 잎사귀처럼 콘크리트 구조물이 빠른 속도로 전통건축물을 잠식해 들어갔다. 1960년대 말이 되면 교토타워 건축을 계기로 고층건물 경관논쟁이 벌어지고, 1990년대 초반에는 교토호텔과 교토역 빌딩이 높이 60미터에 이르는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둘러싼 논쟁이 불같이 타오르기도 했다. 그 이전부터 교토시가 조례를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추진해 오던 경관보존 활동은 이후 본격화되었고 지금은 경관법이 제정되고, 새로운 비전을 담은 경관계획이 본격 시행되면서 일본 고유의 도시경관 보존은 정착기에 접어들었다.

이처럼 몇 몇 도시를 간단하게 훑어보았는데, 이들 도시의 디자인 핵심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유형, 무형의 자산을 잘 보전하고 활용하면서 결국은 시민들이 편리하고 안전하며 쾌적하게 살아가게 하는 터전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도시 본연의 기능적인 면을 간과하지도 않고, 도시의 역사성이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눈앞의 이익 때문에 버려놓지도 않았다.

학성객사와 미술관

이번에는 우리 울산의 도시디자인을 공공문화시설 중심으로 살펴보자. 최근의 큰 이슈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울산미술관이고, 다른 하나는 국립산업기술박물관이다. 먼저, 미술관의 경우는 오랜 산통 끝에 드디어 그 부지가 중구 울산초등학교터로 결정이 되었다. 이 결정의 배후에는 중구 상권의 회복을 바라는 많은 시민과 단체의 힘이 있었다. 현재 울산미술관건립 기본계획 용역이 진행 중인데, 조선시대에 이 자리를 지켰던 울산객사 복원과 미술관 건립이 맞부딪히면서 다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미술관과 객사는 함께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객사 학성관은 적어도 500년간 이 자리에 서 있었고, 당시 울산도호부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시설로 울산역사의 중요한 현장이며, 그 장소가 남아 전하고 있다. 또, 학성관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는 등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점, 특히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여러 점의 사진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실에 가까운 복원을 하는데도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객사 가까이에는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호인 동헌이 보존되어 있고, 객사부지 남쪽에는 옛 관아건물로 알려진 태화서원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파괴한 울산도호부의 핵심지구를 후손인 우리가 다시 파괴하는 것은 옳은 대안이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국내 여러 도시에서는 지역발전 차원에서 객사를 복원하거나 중건한 예가 많다.

신·구 공존하는 도시 디자인 필요

▲ 프랑스 파리.

그러면 울산미술관과 객사 학성관을 함께 살리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번에 용역에서 밝힌 대안은 모두 학성관을 제 위치에 복원할 경우를 상정해서 미술관을 앉히고 있다. 당연히 미술관이 주인공이 되는 배치가 되지 못해서 미술관 추진위원들이 찬성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필자의 아이디어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먼저 발굴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객사 학성관을 제 자리에 복원하되,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외관만 철저하게 옛 모습을 따르고 내부는 현대식 미술관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이 방법은 현존하는 옛 건축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건축물 재생방법으로 이미 세계각지에서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방법 자체가 ‘울산다운 미술관’이라는 과제를 저절로 해결해 주고, 전통건축물 형식의 외관을 갖춘 건물이 모여서 무리를 이루면서 북정동 지역의 독특한 성격을 더 강화해 줄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발굴조사 후 객사 학성관의 발굴 유구를 현장에 보존하고 그 위에 미술관을 올리는 방법이다. 출토된 역사적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존해서 후대에 남겨주는 것이다. 이미 울산에도 대곡박물관 등에 이런 예가 있다. 미술관을 설계할 때의 유구 활용방향에 따라 로비 아래에 투명한 바닥을 깔아서 보여줄 수도 있고, 별도의 전시공간으로 노출시켜서 박물관과 미술관이 결합된 형태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지, 객사 복원이냐 미술관 건립이냐 양자택일로 몰아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국립산업기술박물관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그동안 시민 서명 운동 등 지역 내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당선된 박근혜 후보도 울산입지를 공약한 만큼 유치가능성은 한층 더 밝아 보인다. 울산이 대한민국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에서 해 온 역할과 의미를 생각하면 국립산업기술박물관 울산유치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이제 박물관 유치운동과 더불어 그 입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어야 할 시점이다. 울산만 하더라도 최근의 일은 차치해도 조선시대에는 향교유치로, 일제강점기에는 읍사무소와 시장 유치 등으로 좁은 지역 내에서 격한 주민갈등을 겪었던 선례가 있다.

이번 국립산업박물관 입지만큼은 울산이라는 도시의 미래를 짊어질 핵심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그 입지를 찾았으면 한다. 우리가 거둔 현재의 빛나는 경제적 성과를 후대에 물려줄 커다란 선물로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이 일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업 중심의 울산에서 시가지 내부나 시가지와 인접한 곳에 앞으로 우리가 유치해 올 수 있는 국가적 시설이 얼마나 더 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만일 국립산업기술박물관 울산 유치가 결정이 된다면 그 입지는 자연스럽게 도시재생으로 이어져서 울산 도시공간의 질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기폭제로 활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어쩌면 이 일이 울산의 도심을 재생할 수 있는 국가가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삼건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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