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이 사라지고 있다
서점이 사라지고 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2.1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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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심가의 대형서점을 꼽으라면 단연 광화문 ‘교보문고’와 종각 근처의 ‘영풍문고’ 그리고 ‘반디앤루니스’를 들 수 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종로통엔 ‘종로서적’과 ‘동화서적’, ‘삼일서적’, ‘양우당’ 같은 서점과 극장이 몰려 있었다. 강남이 지금처럼 번성하기 전 종로는 젊음이 넘쳐나는 거리이자 문화의 숲이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무교동 낙지집이나 종로거리 식당, 주점에 가면 출판계 지인들과 눈 마주치기가 바빴다. 유명작가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일도 흔했고, 서점과 출판사 간에 정보를 교환하기에도 수월했다. 이처럼 종로는 출판문화의 거리였으며 그 향내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특히 서점은 누구나 즐겨 이용하는 약속 장소였다. 종로서적 앞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거렸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종로는 문화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서점 또한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더니 종로서적까지 셔터를 내리고 말았다. 특히 종로서적은 수십 년 동안 한국 지식인들에게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를 제공했다. 하지만 아늑한 환경과 세련된 도서목록으로 유명했던 종로서적도 이른바 미국의 ‘보더스 북앤뮤직’을 본뜬 서점 체인이 주도하는 새로운 경향을 따라가지 못해 간판을 내려야만 했다.

부산의 경우도 대표 서점 가운데 한림서원, 동보서적, 광복서점, 청하서림 등이 모두 사라졌다. 인터넷 서점이 할인 경쟁을 하며 손님을 쓸어가 버린 탓이다. 1994년 5,683개였던 서점이 지난해 1,752개로 줄었다. 한국출판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서점이 하나도 없는 지역은 경북 영양군을 비롯해 네 군데로 나타났다.

책과 독자가 만나는 유일한 장소의 절대숫자가 줄었다는 점에서 볼 때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화가 어디로 흐르는지, 남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를 구체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공간의 상실이며 책의 향기와 소리, 지식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곳을 잃고 있다는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서점의 폐업’은 우리가 정신적인 여유를 잃고 있으면서도 절박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동네서점의 폐업은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의 싸움이 그대로 재연되면서 지역의 문화 사랑방과 생태계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서점이 문 닫은 자리에는 대개 휴대폰가게, 커피전문점, PC방이 들어서고 있다.

프랑스에선 한 해 책을 스무 권 넘게 구입하는 독자 가운데 16%가 동네 책방이 추천한 책을 고른다고 한다. 작가 초청 모임을 여는 책방도 있는데, 문화를 중시하는 프랑스인들이 작고 영세한 동네서점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 나서는 이유는 동네서점이 문화의 발상지로 사람들이 교류하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동네서점 가운데 독서 모임을 꾸리는 곳은 드물다. 그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출판 불황의 그림자는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도 예외는 아니다. 온라인 서점의 경우 5위를 달리던 대교리브로가 문을 닫았다. 업계에서는 서점붕괴 현상이 온라인 서점으로도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현재 온라인 서점들은 출판사 광고수익으로 버티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번 사태는 출판계 전체의 위기 속에서 온라인 서점만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게다가 대표 대형서점인 교보문고마저 전년대비 매출액 신장률이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출판계 불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보다 책을 읽지 않는 풍토 때문이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인 이상 가구의 도서 구입비는 평균 1만 6천 141원으로 2003년 조사 이후 가장 낮았다. 또한 월평균 독서량은 0.8권으로 미국 6.6권, 일본 6.1권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 전자책의 영향도 있지만, 전체적인 독서량이 줄면서 대형 서점조차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자본주의 논리를 떠나 서점이 지역의 문화 공간이라는 점의 인식 전환이 시급한 실정이다. 정부와 관련단체가 앞장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책 읽기 운동을 더욱 강화해 자연스레 서점을 찾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또한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출판사, 저자, 서점, 독자가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의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만 편승하느라 앞서간 분들이 남긴 문화적 향기는 아예 잊은 채, 그저 정서가 메마른 삭막한 세상을 맞을 것인지도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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