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의 추억
신춘문예의 추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1.0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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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계사년의 첫닭이 울었다. 묵은해를 미련 없이 보내고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 누구나 한결같을 것이다.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내딛는 출근길의 발걸음들이 더욱 활기차 보인다. 특히 2013년은 국민이 신중하게 뽑은 우리의 새 대통령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게 와 닿는다. 새롭게 취임하는 지도자가 나라의 근간을 더욱 바로 세우고 온 국민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마다 1월 1일이면, 신문들은 저마다 ‘신춘문예’ 당선작을 일제히 발표한다. 등단을 꿈꾸는 예비 작가들의 응모작 가운데 최종적으로 낙점된 오직 1편만이 당선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당선이 되려면 단편소설·시·문학평론 등 각 분야에서 수천, 또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따라서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고난의 길을 통과하기 위해 예비 작가들은 혹독한 계절병을 앓으며 탈고(脫稿)를 향한 자신과의 피 말리는 싸움에 몰입하게 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각 신문마다 신년 특집호에 당선작을 발표했고 영예를 거머쥔 당선인들의 다양한 소감이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문학 지망생들에게 있어 1월은, 당선의 희열과 낙선의 한숨이 교차하는 미묘한 시기인 것이다.

갓 스물이 되던 해부터였을까. 나도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대망’을 품고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이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면 머릿속에서는 신춘문예라는 네 글자의 벌레가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신춘병’의 초기 증상이 고개를 든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고질병에 맞서기 위해 허름한 골방에서 두문불출, 하얀 원고지를 축내며 쓰고 지우기를 되풀이해야만 했다. 나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바로 그 병은, 한번 감염되면 매년 되풀이되는 무서운 병이었다.

그러한 싸움을 예닐곱 해쯤 이어갔을까. 어두운 터널 속을 헤매는 듯한 긴 시간이 흘렀다.그러나 피를 말리는 도전이 빚은 결과는 예닐곱 번쯤의 낙선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국내 최고 권위의 신춘문예만을 고집하던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마침내 높고 푸르렀던 꿈을 접어야만 했다. 고뇌의 흔적이 짙게 밴 창작의 길을 미련 없이 되돌아 나와 출판사의 문을 두드린 나는, 출판·편집이라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그 뒤, 내가 문예지를 통해 나의 옛길을 다시 찾아 등단한 것은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우리나라에서 신춘문예를 처음으로 선보인 곳은 조선일보로, 1928년의 일이었다. 그 뒤 여러 신문에서 신춘문예 공모를 실시, 지금까지 한국문학사를 장식하는 걸출한 문인들을 배출해 왔다. 신춘문예가 한국문학의 거대한 축제로 자리매김해 오는 동안 해마다 신년 벽두를 장식하는 젊은 문인들의 패기와 열정이 우리 문단의 미래를 밝혀 온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갓 당선된 신인에게 부여되는 화려한 조명이 좀 과분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거의 모든 신문사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해를 거르지 않고 이 축제를 마련하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부여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장석주 시인은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라는 글에서 ‘신춘병’의 증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 돌림병은 공모를 알리는 사고(社告)가 실릴 때부터 시작된다. 대개는 안절부절못한다. 밥맛을 잃고, 잠을 설치고, 돌연 침울해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하고, 비명을 지르다가도 미친 듯 웃는다. 사람들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마치 중요한 비밀을 다루는 국가의 정보국 사람처럼 보인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만 몰래 무언가 끼적인다. 이들은 외상이 없기 때문에 멀쩡해 보이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반쯤은 얼이 빠진 상태다.’

장 시인은‘그러나 이 돌림병은 새해가 되면 감쪽같이 사라진다’고 덧붙였다. 큰 후유증 없는 아름다운 병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아무튼 신춘문예 당선작 발표를 시작으로 한국 문학계도 새해 첫 걸음을 내디뎠다. 한국문학의 미래는 예비 작가들에게 달려 있기에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힘차게 미래를 이끌어 나가 우리 문학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에만 남아 있는 전 국민의 문학축제인 신춘문예. 문학청년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외롭고 힘든 과정을 끝내 이겨낸 당선인들에게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김부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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