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 발견 3년뒤 무차별 탁본 진을 쳤다
암각화 발견 3년뒤 무차별 탁본 진을 쳤다
  • 이상문 기자
  • 승인 2012.12.23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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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홍맹곤씨에 들어본 1974년 봄 반구대암각화 현장

울산의 저명한 서양화가 홍맹곤(65·사진)씨는 1974년 봄 반구대암각화 현장에서 기가 막힌 광경을 목격했다.

암각화 입구까지 차량이 들어와 있었고 바위면에는 탁본을 하기 위해 화선지를 붙여둬 세세한 그림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홍씨는 “당시 탁본은 허가도 없이 무절제하게 이뤄졌고 탁본을 하려고 줄을 서 있는 형국이었다”며 “천전리 각석 앞 개울에는 통발로 천렵을 해 취사하는 사람까지 있어 암각화가 검뎅이로 훼손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홍씨가 암각화를 찾은 것은 동국대 문명대 교수팀이 암각화를 발견한지 3년뒤였다. 당시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불교미술을 주제로 미술사를 탐구하면서 경주 남산과 서울을 오가던 시절이었다. 고향에서 바위그림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그제서야 듣고 현장을 답사했다가 탁본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유적의 중요성이 채 알려지기 전이었고, 금석문 수집가들에 의해 마구잡이 탁본이 이뤄진 겁니다.”

홍씨는 1984년 문명대 박사에 의해 구체적인 보고서가 발간되기 전까지 암각화의 중요성은 크게 인식되지 않았고 거의 무방비로 방치됐다고 주장했다.

탁본을 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자신도 암각화의 제작연대나 가치가 세계적인 수준임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훗날 중요성이 밝혀진 후 다시 암각화를 찾았으나 물에 잠긴 모습만 봤을 뿐이었고 누구나 그랬듯이 사연댐의 물을 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걱정했다고 밝혔다.

암각화 발견 41주년을 맞아 홍씨는 보존방법에 관한 논란보다 암각화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홍씨는 “암각화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학문적 접근이 이뤄져야 암각화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비로소 본격적인 보존방법이 도출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고고학, 미학, 사학뿐만 아니라 공학적 연구를 축적하기 위해 울산 학자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관심 있는 학자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화가의 입장에서 암각화는 선사인들의 고도로 발달된 조형감각을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했다.

홍씨는 “암각화의 그림은 선사인들이 동물의 순간적 움직임을 포착해 사실화로 그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놀라운 미적 포착력을 가졌다고 본다”며 “후세의 화가들이 암각화의 도상을 재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도 바로 암각화의 형태감에서 받은 감동을 넘어설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작 홍씨는 암각화의 중요성과 미적 우수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은 한 번도 암각화를 그리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 홍씨는 “예술화와 암각화의 방법론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암각화 발견 직후 한국 학계의 수준에 대한 애석함도 드러냈다.

홍씨는 “암각화가 발견되고 나서도 한참동안 학계에서 고신라 시대의 바위조각 정도로 인식했다”며 “당시 누구라도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다면 지금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또 암각화 주위에서 생활 유적이 출토되지 않고 있는 점도 아쉬워했다.

홍씨는 “주변환경이 이토록 아름다운 암각화 주변에서 선사유적이 발굴된다면 암각화 일대는 선사시대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한 최상의 선사유적 관광지로 탈바꿈될 것”이라며 “암각화 주변의 전체 배경을 비워둔다면 세계에서도 경쟁력을 갖는 선사문화관광지, 테마 유적지가 될 것이고 그러려면 대곡천을 복원하고 주변을 원형으로 돌려놓는 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문 기자 i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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