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책 좀 읽읍시다
제발 책 좀 읽읍시다
  • 이상문 기자
  • 승인 2012.11.13 2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독서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여름 휴가를 떠나면 전 세계의 언론들은 그가 휴가지에서 무슨 책을 읽는지 열띤 취재경쟁을 벌인다. 지난해 메사추세츠주 마서스 비니어드 섬에서 열흘동안 휴가를 보낸 오바마는 그동안 4권의 소설과 1권의 비소설을 읽었다. 전장에 있는 아들을 둔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이 자신에게 전달되지 않는 거리에 있는 한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이스라엘의 땅 끝을 누빈다는 모성애를 그린 데이비드 그로스먼의 소설인 ‘땅끝까지’, 머리가 한데 붙은 채 태어난 에티오피아 샴쌍둥이의 미국 여행을 그린 에이브러험 베르게즈의 소설 ‘커팅 포 스톤(Cutting for Stone)’, 미국 흑인들이 남부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과정을 담은 이사벨 윌커슨의 역사서 ‘다른 태양의 따뜻함’ 등이었다. 올해는 선거 탓에 여름휴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고 무엇을 읽었는지 공개되지는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유분방한 다독파’로 알려져 있다. 노 대통령은 재직시절이나 퇴직 후에도 수시로 독서에 빠졌으며 주변에도 독서를 적극 권유했다. 첫 휴가 때 읽은 책은 폴 데이비스가 어려운 고전 물리학에 흥미를 잃어가는 학부생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려고 쓴 강의 모음집 ‘파인만의 6가지 물리 이야기’, IBM의 기업혁신 과정을 다룬 루이스 거스너의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주5일 근무제에 따른 사회변화와 자기계발법을 이야기한 ‘주5일 트렌드’,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등이다. 한 언론인은 노대통령의 독서벽에 대해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 독서의 내용을 현실정치에 활용하려 했다. 장차관 워크숍이나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 같은 공식석상에서도 적잖은 책을 추천했다”고 술회했다.

박맹우 시장도 다독가다. 그는 굉장한 속독으로 보통사람 몇 배 분량의 책을 읽는다. 격무에 시달리는 틈틈이 책을 읽고 귀가 후에도 미진한 업무를 챙겨놓고 나서 곧장 책을 든다. 이번 중국 출장에도 박시장은 다섯 권의 책을 가방에 챙겼다.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 ‘내 사람을 만드는 CEO의 습관’,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5대 희극’, ‘유쾌한 대화로 이끄는 유머’, ‘조선왕조 500년 야사’가 그것이다. 김해공항에서는 그것도 모자라 ‘내 편이 아니라도 적을 만들지 말라’, ‘성공하려면 습관을 바꿔라’라는 책 두 권을 더 사서 작은 가방에 넣었다. 매번 장기간의 해외출장을 떠날 때 그의 가방에는 대부분 책으로 채워져 있다. 내용으로 보면 박시장이 평소에 무엇을 갈구하는가에 대해 집작할 수 있다. 한 도시의 리더가 갖춰야 할 미덕과 인문학적 소양을 보충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박시장은 “나이가 들어 책이 전하는 내용을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읽고 나면 모든 내용이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녹아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말은 독서하기 좋은 가을을 일컫는 말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지만 내 주위에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이들을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성인들의 독서율은 현재 60%라고 한다. 거꾸로 얘기하면 열 명 중 네 명은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통계는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한국인들의 독서율이 가장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다. 올림픽의 금메달 숫자에 열광하고 온 세계를 들썩하게 만든 한 대중가수의 ‘말춤’에 함몰되면서 정작 마음의 양식이 되는 책을 읽고 감동받았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드물다. 영국국민이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한두 번 읽지 않은 이들이 있을까?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들 중 퇴계나 율곡, 다산의 책을 읽은 이들이 얼마나 되며 성인이 되고 나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은 이는 얼마나 될까. 율곡은 그의 책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성현들이 마음을 기울인 자취와 착함과 악함의 본받아야 할 일, 경계해야 할 일이 모두 책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聖賢用心之迹 及善惡之可效可戒者 皆在於書故也)”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막장드라마의 줄거리를 꿰고 있는 주부들이나 골프장 코스의 장단점을 암기하고 있는 남성들, 새로 등장한 게임의 맵을 환하게 기억하는 청소년들의 이마에 글 한 줄 없는 세상. 과연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 읽지 않는 세상은 일찍이 현진건이 설파한 ‘술 권하는 사회’의 다른 이름이다. 물질이 우선되고 권모술수가 횡행하며 눈앞의 이익에 섬세한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희망이 없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