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도 저 하기 싫으면 안 하는 벱이여
정승도 저 하기 싫으면 안 하는 벱이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5.2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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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벱’이여 한 이유는 옛날 어른들이 동네의 친구가 자식교육을 걱정 할 때, 상대방을 위로하려고 하던 말이기 때문에 옛말임을 강조하려고 쓴 말이다. 아무리 타일러도 자식이 부모 말은 듣지 않고 못 된 짓만 골라서 할 때, 부모의 속은 새까맣게 타고 만다. 이때 옆에서 일러주는 말, ‘저 하고 싶은 것만이라도 제대로 하게 해주어라’는 가치관 교육의 말이, 높은 벼슬도 저 하기 싫으면 안 하듯이 ‘부모가 하라는 데로 다 하느냐’는 구원의 소리이다. 교육에서 가장 핵심 되는 부분이 가치관 교육이다.

‘가치관 교육’을 1960년대 초에 정범모 교수가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때의 주장은 성취동기를 강조하며 우리 국민들이 자연, 주위의 악조건에 도전하는 적극적 사고, 태도, 자신감, 장인정신(匠人精神) 등등이었다. 바로 그 교수는 정부가 정승 자리는 아니더라도 장관 자리를 제의했는데도 자기가 하기 싫으면 안 한다고 사양했다.

이 가치관 교육의 두 가지 요소는 ‘어떤 가치관을 심어줄 것인가’와 ‘어떻게 그 가치관을 심어줄 것인가’로 나뉜다. 민족적, 종교적 차원에서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가’는 그 민족의 진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방글라데시의 자연에 복종, 순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종교적 차원의 가치관은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반감시키고 만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는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행동규범이 바로 그들의 가치관이다. 당연히 강물이 가까운 이웃 동네로 가는 길을 막고 흐르고 있어도 자연에 거슬러 ‘다리를 놓자’는 개척적 가치관은 나타나기 힘이 든다.

그리스 로마의 신화들이 헬레니즘 문화의 기초이면서 자연 개척적 쟁취문화의 모태이어서 지금의 서양문화가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먼 강물도 다리를 놓아가며 끌어다 썼다.

원칙적으로 부모와 자식 간에 가치관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변화·발전해온 문화의 근본이 된다. 사실 이런 차이가 없으면 과학의 발전도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옛날 하던 방식을 그대로 따르면 새로운 시도, 발전의 모멘트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치관 교육의 방법이 아주 어려운 이유는 청소년기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잘 먹혀 들어가는데, 이때 멘토(mentor)가 없으면, 방황하다가 편한 데로 살아가고 마는데 있다.

사실 그 멘토도 친구들이 영향을 미쳐서 결정되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이다. 청소년기에는 같은 또래의 동성(同性) 또는 이성(異性)의 말이 학교의 선생님 말이나, 가정의 부모 말보다 더 중요하고 더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청소년 독서습관 조사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친구가 읽었다는 책이어서…’가 책의 선택 기준 두 번째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렇기 때문에 부모들이 자녀들 친구 사귀기에 신경을 쓴다. 그런데 이 신경이 지나치게 외골수면 최근의 사고처럼 사회적 인권의 문제가 된다. ‘내 자식하고 놀지 말라’는 말은 부모의 기준이지 내 자식의 기준은 아니다. 내 자식하고 놀기 때문에 내 자식 친구가 더 착하고 올바르게 성장할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모르고 한 소리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의 아이가 좋은 친구를 사귀어서 훌륭하게 된 역사적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의 우정이 그 예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가치관 교육의 중요한 요소인데 우리는 이것을 쉽게 조정하지 못해서 애가 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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