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와 은행나무
도토리와 은행나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10.24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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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행열매 먹어도 되나?

울산의 도로나 공원에는 은행나무가 많다. 울산의 가로수 13만여 그루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20%를 차지한다. 은행나무는 노란색 단풍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거기에다 오래 살고, 공해에도 강해 한때 가로수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나무이다.

문제는 가을에 떨어지는 은행열매다. 그냥 두면 발에 밟혀 도로가 지저분해 진다. 냄새는 또 얼마나 고약한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시설관리공단이 시민과 함께하는 은행나무 열매따기 체험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채취한 열매는 각자 가져가거나 이웃돕기에도 활용했다.

하지만 온갖 차량 매연과 먼지 가득한 도로에 서 있는 은행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괜찮을까? 서울시 등은 중금속 오염 경고를 내린 바 있다. 안양시는 채취금지령까지 내렸다. 그런데 울산시는 안양보다 훨씬 높은 중금속이 검출됐지만 식용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울산시 보건환경연구원이 간선도로 8곳의 은행열매를 채취해 검사했다. 결과는 납은 최고 0.055mg/kg 카드뮴은 0.019mg/kg이 나왔지만 농산물 중금속 기준에 따라 식용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인체에 해가 없다는 안전판정인데 이 수치는 은행열매를 전량폐기하고 채취금지 조치를 한 안양시보다 납은 5배 카드뮴은 2배나 높은 것이다. 또 지난 2008년 검사에서 납이나 카드뮴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해가 갈수록 가로수 은행열매의 중금속 오염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견과류에 대한 중금속 기준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에게 전달된다면 분명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익기 전에 열매를 채취해 폐기하거나 은행가로수를 수나무로 교체할 수는 없는지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

2. 야생의 것은 야생에게 돌려주자.

상강도 지났으니 이제 가을도 뜸들이는 시간. 나뭇잎은 색깔이 변하고 열매가 떨어지는 시기이다. 산길을 걷거나 등산을 하다보면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도토리는 묵을 만드는 등 우리와 친숙한 열매이다 보니 최근 몇 년 사이 도시민들에게 도토리 줍기가 인기다.

엄격히 말하면 도토리는 야생동물의 것이다. 그들에게는 귀하고 중한 식량이다. 다람쥐에게 도토리는 중요한 양식이고 어치 같은 새들도 도토리를 좋아한다. 겨울까지 땅 위에 떨어져 있어도 잘 썩지 않으니 야생동물의 월동 식량으로 요긴하고 곤충들은 산란 장소로 활용하기도 한다. 떡갈나무와 상수리 굴참나무가 도토리를 떨어뜨리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는 생명연장의 행위다.

사람들은 도토리를 주워 별미삼아 묵을 만든다. 그냥 맛보는 정도의 음식이지 주된 식량이 아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야생동물과 처지가 다르다. 사람들이 많이 주워 갈수록 동물들은 그만큼 굶주린다.

사람은 토도리 없이도 살 수 있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든 세월이라지만 야생의 것은 야생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예전에 까치밥을 남겨두었다. 겨울에 먹이를 찾아 날아 온 새들에게 한 끼를 제공하는 인정이었다. 사람이 동물에게 베풀었던 여유이기도 했다.

물론 동물을 생각하기 전에 사람부터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1939년 여름에 언양 지방에 큰 가뭄이 들었다. 먹을 게 없던 주민들은 야산에 올라 도토리를 주워 생계를 유지했다. 수백명의 주민이 살기 위해 만주로 떠나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언양 5개면 주민들 대부분이 매일 산에 올라갔다. 도토리를 따기 위해 하루 수천 명이 산에 몰려다니기도 했다. 주민의 60%가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에 큰 가뭄까지 겹쳐 9월부터 익지도 않은 도토리를 채취했던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묵을 만들기 위해 마구 줍는다. 사람은 기분 좋게 별미를 맛보지만 야생동물은 배고프다.

김잠출 기획국장 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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