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지만 배울만한 것
일본이지만 배울만한 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9.0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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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없고 약삭빠른 도둑 심보의 섬나라 일본. 한반도계 왕을 신처럼 받들면서도 뿌리 이야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는 의제군주국 일본. 숙명적으로 철천지원수 같은 나라지만 그래도 배울 것은 있다.

일본 이야기가 나온 김에 권철현 세종재단 이사장에 대해 조금 언급할 필요를 느낀다. 신한국당(새누리당 전신) 공천을 발판으로 15대 이후 부산 사상구에서 국회의원을 내리 3선 역임한 그는 19대 총선 당시 친박계의 손수조 후보에게 밀려 정치 재기의 뜻을 잠시 접고 만다. (민주화교수협의회 회장을 지낸 그는 신군부의 눈총을 피해 일본 쓰쿠바(筑波)대학원 유학길에 올라 도시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이회창 후보 비서실장과 이명박 후보 특보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제18대 주일대사로 3년 2개월 재임한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일본통’이다. 19대 총선 직전에 펴낸 ‘간 큰 대사 당당한 외교’란 저서 소개에서 출판사는 이렇게 서술했다. “유학시절 배운 유창한 일본어와 겁 없는 담대함, 특유의 친화력으로 한일 외교의 한 페이지를 훌륭하게 장식했다. 끝없이 두 나라 사이의 긴장관계를 일으키는 아킬레스건, 독도문제에서는 말보다 행동, 비례의 원칙으로 밀고 나가자는 강한 전략을 구사했다.”

저자 자신은 이렇게 술회했다. “나는 일본 대사로 일하면서 일본의 모든 것을 한국과 대비해서 생각하고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좋은 것을 보면 한국도 저렇게 해야 할 텐데 하면서 궁리를 했다.…가장 가까운 일본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들여다보고 배울 건 배우고 버릴 건 버릴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는 동아대학교 교수 시절 ‘사단법인 도시발전연구소‘와 함께 ‘부산정사협(=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부산시민협의회)’이란 시민단체를 이끌었다. 한 번은 일본 돗토리(鳥取)현 어느 작은 마을의 주민단체를 연구소로 초청, 그곳의 주민운동을 슬라이드로 소개했다. ‘우리 마을의 둑을 우리의 땀으로 아름다운 화단으로 가꾸자’는 주민운동은 순수하면서도 줄기찬 데가 있었고 마침내 관의 지원까지 이끌어냈다는 소박한 이야기였다.

‘순수하고 줄기차고 환경을 생각하는’ 주민운동은 지금도 연면히 이어지는 모양이다. 경향신문은 3일자 도쿄특파원 기사에서 <일본, 자연 살리려 ‘57년 된 댐’ 철거>란 제목 아래 자발적 주민운동의 성공사례를 하나 보도했다.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이 1일 노후 댐을 해체해 자연상태로 되돌리는 공사에 착수했다. 댐 건설로 수질이 악화돼 어업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민들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일본에서 이런 시도는 처음이다.…아사히신문은 ‘댐 철거가 하천 수질 개선과 바다 생태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아라세댐(야쓰시로시 구마천에 설치) 철거 공사는 4대강 사업 이후 수질 악화가 심각해진 한국에도 시사점을 줄 것으로 보인다.”

‘조금은 생뚱맞은 비교’라는 지적이 따랐지만 ‘4대강 사업’의 본보기로 떠올랐던 ‘태화강 되살리기 사업’에 새삼 시선이 간다. ‘태화강의 기적’으로 KBS의 ‘성공신화’에 등장할 만큼 반향이 컸던 이 사업은 사실 시행착오가 있었다. 사업 초기, 태화동 불고기단지 앞 둔치에서 진행된 준설작업은 ‘생태하천’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골재 확보에 치우친 나머지 초강력 흡입장비로 강바닥 모래자갈을 남김없이 빨아들인 것은 수서생물의 존재, 수중생태계의 질서를 외면한 행위였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준설이 끝난 뒤 한동안 부유물질이 떠다니고 강물이 뿌옇게 흐렸던 현상을 눈여겨본 시민이 일부는 있었다.

태화강과 동천의 합수지점(=두물머리)에 자연현상으로 생겨난 습지는 울산시가 람사르 습지 등록을 추진할 정도로 시민의 자랑거리 재산목록에 올랐다. 그렇지만 수년 전만 해도 사정은 딴판이었다. 관할 구청은 토사의 유입으로 태화강 둔치에 자연스레 생겨난 둔덕의 수생식물을 ‘모기 서식처’라는 이유로 베어내고 나중엔 허물었던 일까지 있었다.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비록 얄미운 이웃이지만 권철현 전 주일대사의 언급처럼 배울 것은 배우자는 주장을 이 시점에 펴는 것은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울산의 국보가 마모의 위기 속에서 40여년이나 물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이유는 1965년에 완공된 사연댐 탓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일본 주민운동의 성공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자. 그리고 죽음의 강 태화강을 생명의 강으로 되살린 기적의 노하우를 밑거름으로 삼자. 우리의 국보 되살리기에도 범시민적 지혜를 모아 보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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