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길
치유의 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9.0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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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루쉰의 ‘고향’ 중에서)

2005년 모 인터넷 언론매체 편집국장을 끝으로 언론인 생활을 접은 서명숙(제주올레 이사장)은 도보 여행자의 천국인 스페인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 산티아고 순례길에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다. 장장 800km에 이르는 거리를 묵묵히 걸으며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자기를 찾아가는 데에 몰두한다. 지친 마음의 치유를 위한 여정이었다.

그녀가 제주올레길을 개척하며 집필한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헤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자기나라로 돌아가서 각자의 까미노를 만드는 게 어때?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제주올레길의 씨앗이 뿌려진 순간이었다.’

그녀는 도보순례의 긴 여정을 통해 자신이 살아 온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도보순례가 삭막한 도시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치유와 휴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가 어린 시절 동무들과 함께 뛰어놀던 옛길들을 하나씩 되살리기 시작했다. 원시적인 옛길, 자연스러운 흙길, 사라져가는 길을 찾아내 걷자는 취지였다. 오로지 걷는 사람들만을 위한 길, 걷고 싶은 만큼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해 끊어진 길을 잇고, 잊혀진 길을 찾고, 사라진 길을 불러냈다.

기존에 있던 길에 이름을 붙이고 내버려진 길을 다시 찾아내고 막힌 곳은 이어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그동안 외진 길이라 해서 발길이 끊어졌던 그런 길들의 가치를 되찾아주는 의미가 곁들여졌다. 꾸준하게 만들어진 제주올레길은 불과 3년 만에 21개라는 놀라운 숫자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제주올레길에 열광하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이 산이라는 특성 때문에 남성스러운 매력을 갖고 있다면 제주 올레길은 엄마의 품 같은 여성스러운 매력을 뽐낸다는 탐방가들의 예찬이 이어진다.

‘고샅’의 제주도말인 ‘올레’는 본래 마을의 큰 길에서 집 대문까지 이어지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가리키는 제주도 방언으로 제주도 남쪽 해안가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다. 지금은 자동차로부터 되찾은 사람의 길을 폭넓게 일컫는다. 그곳엔 자연과 역사, 문화와 삶의 자취 등이 오롯이 녹아 있다. 또한 올레길에는 한적한 시골마을과 포구들이 자리하고 있어 시골마을에서 자란 올레꾼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마음의 휴식을 전해 주는 길로 알려져 있다. 제주올레길은 ‘놀멍 쉬멍 걸으멍(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해야 제맛이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게으름 피우며 놀면서 쉬면서 걷는 것이 목적이다. 애당초 ‘목적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속도’에서 해방된 여행인 것이다.

2007년 9월, 첫 코스가 탄생한 이래 근래에 개장한 추자도 18-1 코스까지 제주올레길은 모두 21코스가 되었다. 코스마다 제주올레사무국에서 정해 놓은 난이도가 다르지만, 대략 네댓 시간에서 대여섯 시간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8~22km로 구성된 각각의 코스는 하루에 한 코스, 많게는 두 코스를 걸으면 적당하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코스는 제7코스이다. 이 코스는 외돌개에서 시작해 돔베낭길, 호근동, 속골, 수봉로, 법환포구, 두머니물, 일강정, 바당올레(서건도), 풍림리조트, 강정마을, 알강정, 월평포구를 거쳐 월평마을까지 16.4km에 걸쳐 이어진 ‘바당올레(바닷길)’로 갯내음과 여(바다 밑에서 솟아오른 바위)와 돌담을 따라가는 길이다.

제주올레길의 등장은 그동안 자동차를 이용한 관광에 머물러 있던 이미지를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는 생태관광으로 탈바꿈시켰다는 데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제주올레길은 우리 모두의 재산이므로 철저하게 보호, 관리해야 할 의무 또한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본다. 또한 정기적으로 각 탐방로의 환경훼손 정도를 살피고 특히, 여행자들의 신변 안전 문제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한국관광의 별’로 떠오른 제주올레길. 우리 모두가 일등 올레꾼이 되기 위해서는 풍광을 즐기는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그 길이 아름답게 유지될 수 있도록 쓰레기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출발해야겠다. 더불어 지역민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열린 마음까지 갖춘다면 제주올레길을 걷는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지지 않을까.

<김부조 시인·동서문화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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