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문화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8.2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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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을 유심히 보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저들의 문화적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개막식부터 이들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영화감독 대니 보일이 총연출을 맡아 엘리자베스 여왕이 제임스 본드의 영접을 받아 헬리콥터를 타고 주경기장에 낙하하는 장면을 합성해 보여주면서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문화의 우월성을 은근히 내비췄다.

또 개폐막식을 비틀즈로 시작해 비틀즈로 끝맺은 것도 독특했다. 그동안의 올림픽이 자국의 전통문화와 고급문화를 알리는데 급급한 반면 영국은 대중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비틀즈를 올림픽 문화상품으로 내놓았다.

올림픽이 진행되면서 그들의 자신감은 색채에서 드러났다. 모든 경기장의 바닥이 핑크였다. 핑크는 자칫 ‘날린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그들은 적절하게 채도를 조정해 가며 경기장의 색을 통일했다. 어지간한 자신감이 없으면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색깔이다. 더구나 올림픽 엠블럼도 매우 현대적이었다. 각 경기장마다 표시된 종목 표시도 마치 어느 팝아티스트가 고안해 낸 것 같은 신선미가 넘쳤다.

우리가 생각하는 영국의 문화는 매우 고전적이고 보수적이다. 대영제국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뿌려둔 그들의 문화는 근엄하기 짝이 없다. 이번 올림픽에서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가진 고정관념을 깨끗하게 불식했다.

다시 생각해 본다. 문화는 저지르는 것이다. 과거의 전통과 진정성만 지키려 든다면 창의력은 종적을 감춘다. 전통의 바탕에 새로운 비전이 제시된다면 그것이 주는 힘은 강력하다.

내가 좋아하는 팝그룹 ‘Men at Work’는 불협화음을 자신들의 트레이드마크로 활용했다.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왜 이런 음악을 할까 의아해 했지만 갈수록 힘이 있고 재미났다. 20세기 후반 후발주자로 출발한 그 그룹이 선배 그룹들이 지향했던 패턴을 그대로 답습했다면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보컬리스트도 그랬고 연주자도 특색이 없었다. 그들이 내세울 것은 불협화음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성공했다.

새로운 시도가 대중의 평가를 받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문화의 관성에 젖어있던 대중은 적응하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당대에 승부를 보려 한다면 대세에 민감해야겠지만 진정한 문화행위는 미래를 관측하는 거시안이 필요하다.

울산은 문화도시로 나아가는 출발점에 서 있다. 그동안 반석을 다져왔다면 이제는 그 위에 무언가를 세워나가야 한다.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과감하게 시도하고 실험해야 한다. 많이 보고 우리 실정에 맞는 것을 차용해도 된다. 모방은 창작의 시작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저질러 나가야 한다. 이것 재고 저것 살피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

태국의 방콕은 최첨단 빌딩과 도로가 있어 국제도시로서의 면모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한 블록만 돌아가면 퇴락한 건물과 허물어진 담장, 오염된 운하가 속속들이 드러난다. 누가 그 도시를 두고 국제도시하고 하는가. 그러나 그들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도시 구조에 급한대로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허물어진 건물의 담장에 얼핏 보면 낙서에 가까운 벽화를 그렸다. 취객이 맘대로 그린 듯한 그림들은 묘한 조화로 빈부의 격차가 심각한 방콕이라는 도시의 문제점을 감추는데 일조했다.

동유럽의 빈민가도 마찬가지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는 허물어져가는 시영아파트를 세계적인 미술가 훈데르트 바서에게 재건축하게 해서 국제적 명소를 만들어 뒀다.

체코 프라하의 프라하성 주변에 중세 연금술사와 금은세공사들이 살던 궁색한 거리를 허물지 않고 그대로 보존해 관광명소로 만든 곳이 있다. ‘황금소로’가 그곳이다. 지금은 대통령궁으로 쓰이는 프라하성보다 그곳에 관광객이 들끓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발상의 전환이 통했기 때문이다.

울산은 곧 시립미술관을 건립해야 하고 다양한 문화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중구는 중앙로 원도심을 문화의 거리로 가꾸려 한다. 책상에 앉아 붓만 물고 있으면 붓대롱이 썩을 뿐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보고 느끼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 자신감을 가지고 과감한 창작을 할 때 비로소 경쟁력 있는 문화가 생산된다. 근엄하기 짝이 없던 영국이 신선하고 현대적인 문화적 감각을 활용한 것에 힌트를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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