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산업단지 인프라 튼튼
글로벌시대 거점도시 자리매김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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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문 기자
  • 승인 2012.08.21 2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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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입 용이 항만 여건 우수
이병철 회장, 朴대통령에 추천
다른지역 고려 않고 건설 착수
세계 제1의 공업도시 우뚝
울산공업센터 건립 계획에 직접 참여한 김의원(81) 전 건설부 국토계획국장은 이미 팔순을 넘겼다. 그는 울산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산업도시로 성장했으며 세계 어느 곳도 울산의 발전상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50년 동안의 압축성장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인 성장의 구체적인 기록 자료가 없다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국가기록원이나 국토건설 책자 등을 꼼꼼하게 뒤져 봤는데 울산공업단지 개발에 대한 항목이 없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갔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고 국가 차원의 지원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자료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화를 이끈 울산개발사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입니다.”

그는 자료로 남지 않은 울산공업센터의 초창기 역사에 대해 꼼꼼하게 정리한 쪽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당시의 울산 분위기가 가득 차 있다고 했다.

김의원씨는 우리나라 국토계획 분야의 권위자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건설부 국토계획과장으로 재직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국토계획과 개발에 대해 직접 보고를 하는 몇 안 되는 공직자 중의 한 사람이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씨는 울산공업센터 선정의 실무를 담당한 것 외에도 울산특별건설국 서무과장으로 부임해 1년 8개월을 울산에서 지내면서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1961년 5월 군사혁명이 일어난 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 구상되고 발표가 됐습니다. 이 계획은 자유당 시절 입안한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을 수정한 것입니다. 1962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1차 5개년 계획의 주도 사업이 바로 울산개발입니다. 당시 울산공업센터에 대한 아이디어는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제안한 것입니다.”

울산공업센터 조성 50주년인 올해 산파역을 담당했던 김의원씨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당시의 울산과 지금의 울산 모습을 비교하면서 목소리가 격앙됐다.

“공업특구로 지정되던 60년대 초의 울산은 인구가 3만명 남짓한 시골마을에 불과했습니다. 허허벌판에 터를 닦고 공장들이 들어설 때 과연 지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그 중 몇몇 기업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공업센터로 지정되는 과정에 대해 상당부분 자세히 알고 있는 김씨는 당시의 상황을 손금 들여다보듯이 자세하게 설명했다.

“울산이 공업센터로 지정되는 데 이병철 전 삼성회장의 역할이 컸습니다. 1961년 5·16혁명 직후 수많은 기업인들이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집권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자 감옥에 있던 이병철 회장이 ‘기업인들을 다 구속시켜 놓고 경제개발은 누가 하느냐’고 건의했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대통령이 이 회장을 불러 ‘당신이면 경제개발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이 회장은 ‘삼양사 김연수 회장과 이미 울산에서 설탕과 비료사업을 시작했으며 조사한 바로는 울산은 부두건설에 돈이 전혀 안 들어 가고 지형이 자연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수한 항만여건을 갖춰 수출과 수입이 용이하고 특히 일본 등 외국과의 교역에 좋다’고 답했습니다. 그 말에 아이디어를 얻은 박 대통령은 그날 바로 기업인들을 석방하고 본격적인 경제개발 계획과 울산공업센터 건설에 착수한 것입니다.”

공업센터 지정을 위해 다른 지역은 고려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병철 회장의 건의와 참모, 전문가들의 입지 여건 조사를 거쳐 울산을 대상지로 결정했다.

울산공업센터를 건설하면서 최초로 만든 계획에 따르면 울산에 정유, 비료, 제철, 발전을 4대 국가기간산업으로 정하고 집중 육성하려 했다. 현재 현대자동차 공장 부지 약 650만평에 공업용수 12만t, 2만t급 선박접안 항만 등을 계획하고 제철공장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제철공장을 세우려면 10만t급 항만이 있어야 가능했다. 외국에서 철광석을 싣고 와 하역을 해야 하지만 울산항은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제철소가 포항으로 옮겨갔다.

공업센터로 지정되고 나서 1962년 3월부터 울산특별건설국이 설립됐다. 그 위상은 대단했다. 초대 국장은 육군 준장 출신이 맡았으며 이사관 직급으로 도지사와 같은 급이었다. 당시 울산의 책임자인 읍장은 주사급이었고 그해 6월 시로 승격됐지만, 울산특별건설국의 지위에 비하면 매우 낮았다. 새로운 도 단위 조직이 울산에 건설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만큼 울산공업센터는 당시 국가의 중요 시책사업이었다. 대통령은 거의 두 달에 한번 꼴로 울산에 내려와 브리핑을 받고 지시를 할 정도로 관심이 대단했다.

김씨의 울산특별건설국 생활동안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휴일이면 인근도시인 경주와 동래, 해운대의 요정에 건설국 직원들이 가득했다는 말도 있다. 또 울산개발이 하도 거대하게 이뤄지는 바람에 공산주의 국가였던 소련이 ‘혹시 군수기지 건설이 아닌가’하고 의심해 공해상에 잠수함을 띄워놓고 5년간 감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배경 중 하나가 울산공업센터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김씨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입안한 전문가로 견해를 밝혔다.

“박대통령은 서독방문 후 공장만 짓는다고 경제가 재건되는 것이 아니라며 고속도로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고속도로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건설비도 없었습니다. 수소문한 끝에 고속도로 건설 관련 박사논문을 쓴 인물을 건설부장관에 임명하고 도로개발특별회계를 만들어 비용을 충당하도록 했습니다. 울산이 고속도로 노선에 포함된 것은 박 대통령의 혜안에다 이후락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역할도 있었습니다.”

김씨는 울산이 세계 제1의 공업도시라는 점을 특별하게 강조했다. 공장의 입지는 물론 바다, 평야, 산이 둘러쳐진 울산이야 말로 가장 훌륭한 입지조건을 갖췄으며 당시 정부가 울산을 공업센터로 지정한 혜안이 탁월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문가가 한국에 와서 울산에 대해 탄복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엄청나게 성장한 세계적인 기업은 물론이고 항만과 도로 등 배후 여건도 완벽해 앞으로 울산은 세계 경제의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지난 50년간 울산이 한국 경제발전에 끼친 공은 이미 모두가 인정하고 있고 앞으로 50년 동안도 흔들리지 않는 산업의 중추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여든이 넘은 도시계획 전문가의 눈에 울산은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주도할 거점도시로 성장해 나갈 준비가 이미 착실하게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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