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계절 ‘입시철’
잔인한 계절 ‘입시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8.20 2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교마다 수시입학 전형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학생들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그동안 자신의 화려한 이력을 증명할 서류를 준비해야 하고, 교사들은 추천서를 쓰기 위해 집필(?)의 고통을 맛보고 있다. 학생들은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자신을 점검할 여유가 없고, 교사들은 자신이 추천할 학생에 대해 진지하게 어휘를 고를 시간이 부족하다. 우리 학교처럼 대부분의 학생이 수시 전형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추천서를 쓰느라 지친 선생님들은 한 교사가 써야 할 추천서가 몇 장이나 되는지 장난삼아 산술적인 계산을 해 보기도 한다. 어쨌거나 쓰지 않으면 답이 없는 계산이다. 평소에 잘 알던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학생과 인터뷰를 하고, 생활기록부자료를 다시 점검하고, 평소의 기록들을 참고한다. 추천서 한 장을 쓰기 위한 교사의 노력이 얼마가 되더라도 학생과 학부형은 교사에게 추천서를 받기 원한다. 교사들은 학생을 위해, 진학률을 위해, 교사된 이의 성취와 책무를 위해, 기타 등등의 무수한 사명감을 가지고 밤늦게까지 추천서를 작성한다. 그 과정은 심히 고통스럽지만, 학생의 합격 소식으로 고통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떤 추천서를 원하는가? 대학은 어떤 자기소개서를 원하는가? 추천서와 자기소개서의 기본 원칙은 두 가지다. 성실과 진실. 이 두 가지가 담보되지 않은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는 명백히 가짜이고 어떤 의미에서 음모이기도 하다.

모 대학의 리더십 전형에 합격한 학생이 성폭력에 가담한 전력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추천서를 작성한 교사가 또 욕을 먹게 생겼다. 의도적으로 그 사실을 은폐했다면 교사의 책임도 물론 있다. 알려야 할 만한 중대 사안을 고의로 누락했다면 성실성과 진실성에 어긋난다. 하지만 그 아이가 추천서를 쓰게 되기까지의 경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사를 비난할 수도 옹호할 수도 없다. 안타까운 것은 대학에 가고 싶다면, 좀 더 배워서 좀 더 나은 인생을 살고 싶었다면 애초에 지적 장애 여중생 집단 성폭행이라는 위험한 사고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충동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청소년 때의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매 순간을 진지하고 반듯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가르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니까, 술에 취했으니까 등의 이유로 잘못에 관대한 분위기는 우리 사회를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을 지도 모른다.

입시와 관련해서 사정이 이렇다보니 명문대 학생이 지방으로 소개서 아르바이트를 하러 내려오기도 한다. 휴가도 즐기고 짭짤한 알바비도 챙길 수 있는 기회가 여름방학이다. 소개서 한 편에 100만원을 넘는 경우가 많다니 대학생 알바로서는 최고의 부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소서 알바가 이 정도라면 자기소개서 대행업체가 당연히 성업을 하기 마련이다. 자기 소개서는 입시뿐만 아니라 취업에도 필요한 서류라 그 업체는 불경기가 없을 것도 같다. 자신을 소개하는 글조차 직접 쓰지 못하는 교육 수준도 안타깝지만 그러한 빈틈을 이윤 창출의 기회로 삼는 대행업자들도 어지간하다. 이 나라 교육을 위해서, 돈이 되더라도 자소서 대행 분야는 좀 남겨 두면 어떨까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돈이 된다면 남이야 죽는 줄 모르고 건강을 해치는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처럼, 이들은 우리 사회의 정신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는 영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국어교사라는 이유로 수험생을 둔 지인들이 소개서를 봐 달라고 가끔 부탁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작성해 온 소개서는 소위 말하는 일류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학생들도 문장이 어지럽고 비문이 많다.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명문대 지원생을 보면서 국어교사로서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고,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이 미래를 보장받는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이 새삼 의아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지인이 가져온 아들 딸의 소개서에 대해 조언을 하면 그들은 마치 내 말이 합격을 결정하기라도 할 것처럼 열심히 다듬고 새로 쓰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애틋한 마음을 시비할 마음은 결코 없다. 그들은 성실하고 진지하게 부모 된 이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서 폼 나게 살았으면 하는 부모 마음이야 다 똑같지 않겠는가? 단지 나는, 가짜인 자기소개서로도 버젓이 대학에 합격하고, 가짜인 추천서도 기꺼이 쓰게 만드는 이 사회의 음모가 불안할 뿐이다.

<배정희 울산과학고 교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