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포경(scientific whaling)
과학포경(scientific whaling)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8.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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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장하나 의원(35·제주 비례대표)이 장생포 주민들을 뿔나게 했다. 지난 5일 ‘고래보호법’을 대표로 발의했기 때문이다. 환경운동가인 장 의원은 이 개정안에 ‘일본식 과학포경’과 ‘고래의 전시·유통’을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장생포 주민들은 ‘고래문화보존회’를 앞세워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지난 13일 민주당 울산시당에 몰려가 “개정안 취소”를 강력히 요구한 것이다. 주민들은 중앙당으로 보내는 항의서한에서 “IWC(국제포경위원회)가 규제하는 ‘멸종위기 고래’란 대형 고래 13종을 말하는 것이지 돌고래를 포함한 소형 고래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1982년에는 밍크고래가 IWC의 ‘전면금지 대형 고래 9종’에 포함된 적이 있었다.)

주민들은 또 1986년 IWC의 ‘상업포경 전면금지’(=‘포경 모라토리엄’) 조치를 우리 정부가 무턱대고 따른 것은 졸속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그 바람에 “돌고래와 밍크고래는 27년 동안 개체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 바다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폈다. “돌고래·밍크고래의 과잉번식으로 고래 먹잇감이자 어민 소득원인 오징어나 고등어 같은 연근해 어족자원이 눈에 띄게 줄어 타격이 크므로 ‘솎아내기 포경’이라도 허용해야 된다”는 주장이었다.

18일에는 김기현 의원(새누리당·남구을)이 울산사무국에서 장생포 주민을 만나 힘을 실어줬다. 김 의원은 “5천년 식문화(고래 식용) 전통이 무시돼선 안된다”며 ‘과학적 조사를 위한 제한된 포경’(=과학포경)을 반드시 허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정구 장생포고래문화보존회 사무국장은 “개정안 발의는 국민 감성을 자극해 인기를 얻으려는 발상”이라며 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상업포경(commercial whaling)’의 의도를 감춘 ‘과학포경(scientific whaling)’에 대한 일본의 집념은 실로 대단한 데가 있다. 우리 정부의 과학포경 요구가 외면당하는 이유도 일본의 탐욕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 2005년 6월 울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57차 IWC 연례회의에서 일본 대표단은 ‘연구조사 목적의 과학포경’ 쿼터의 확대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했다. 총회에서 표 대결을 벌였지만 찬성 23 대 반대 29로 부결된 것이다.

IWC 연례회의를 유치한 한국 대표단은 비장의 무기로 ‘과학포경’ 카드를 꺼낼 참이었으나 총회 분위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감추고 만다. 찬반투표에서도 중국 등 다른 4개국과 함께 ‘기권’ 의사를 표시했던 것이다. ‘고래 섭생’ 식문화를 죽어라 반대하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와 국제 환경단체들의 기세가 워낙 등등했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 ‘그린피스’ 회원들은 울산 환경단체 회원들과 함께 장생포 고래박물관 근처에서 여러 날 천막농성까지 벌였다. 구호는 물론 ‘포경(捕鯨) 반대’였다.

이들이 ‘과학적 연구조사 목적의 포경’ 즉 ‘과학포경’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분명하다. ‘고래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일본이 ‘과학적 연구조사’는 말뿐이고 식용 목적의 고래잡이에 혈안이 돼 ‘과학포경=상업포경’의 선입견을 확실히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5월 호주 정부는 “일본의 포경은 상업용”이라며 일본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기도 했다.

과학포경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7월 4일(현지 시각)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IWC 연례회의에서였다. 한국 대표단이 ‘과학포경 재개’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 계기가 됐다. IWC 회원국 중 미국과 뉴질랜드는 즉각 반대 입장을 나타냈고, 영국은 BBC 특집기사로 문제제기에 가세했다. 반대여론은 국내에서도 들끓었다.

공석환 씨는 7월 6일자 조선닷컴에서 “포경 재개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면서 포기를 종용했다. 임홍재 전 주(駐)베트남 대사는 8월 17일자 서울신문 기고(‘포경 재개의 선결요건’)에서 “여수박람회 주제와 어울리지 않고 아직도 ‘반(反)포경’ 국제여론과 IWC의 분위기가 거센 만큼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반대여론이 빗발치자 정부는 마침내 뜻을 접고 말았다. 김황식 총리가 7월 17일 청와대 주례보고에서 “고래의 섭생 연구는 필요하지만 ‘비(非)살상 연구’만 허용키로 했다”고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을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기에 내년 5∼6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IWC 과학위원회’에서 한국 대표단이 파나마시티에서 공언했던 대로 ‘과학조사 포경계획서’를 실제로 제출할지 어떨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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