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사계절 반복되는 여우변덕 날씨
하루에 사계절 반복되는 여우변덕 날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8.1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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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바람타고 구름 몰렸다 사라져
맑은 냇가 수초·물고기 모습 보여
물 풍부한 곳은 봄 들판처럼 평온
평화로운 초원·별의 융단은 환상
자갈 흩어진 초원은 고비풀만 듬성
▲ 몽골의 산,강, 들판을 보여주는 곳. 안산암이 거칠게 풍화된 산은 토양과 수분이 부족해 나무가 거의 자라지 않는다. 강에는 맑은 물이 흐르지만 주로 만년설이 녹은 물이다. 최근에는 강우량이 늘어 강물이 불어났다. 들판은 강변 쪽은 아름다운 초원을 이루지만 대부분의 거친 황야는 자갈과 '고비'란 풀만 듬성듬성 자란다. 사진에 보이는 다리는 길이 100m 너비 6m로 1964년에 건립돼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다. 건널때 교량을 수리할때 쓴다면 통행료를 받았다.
몽골 알타이를 답사하는 첫 날 동행한 체르빈도르지 몽골 고고학연구소장이 ‘몽골의 인상이 어떠냐’고 물었다. ‘막막하다’고 답했다.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3시간 가량 비행기를 타고 몽골의 서북 끝 지역에 도착했다. 그런 다음날 2시간쯤 초원을 달린뒤 오고간 문답이다.

덜컹거리는 길이 위를 뒤집어 놓았고, 가까이서 보는 초원은 온통 자갈밭 이었다. 그 사이에 염소가 뜯어먹는 ‘고비’ 풀이 듬성듬성 났다. 멀리서 보면 그저 푸른 초원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니 메마른 자갈밭이었다.

주변의 산은 거칠게 풍화됐고 대부분 나무가 자라지 않고 누런 색을 띠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지형도 대부분 삭막했다. 남은 긴 여정이 고달플 것이 예상되고 첫 인상 마저 거칠었다. 평화로운 초원과 별의 융단이 깔린 밤하늘의 나라는 환상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막막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옳은 답이 아니었다.

광막한 들판 가운데 부분적으로 우리나라 봄 들판같은 곳이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가 있었다. 산에는 교목이 자라는 곳도 있었다. 아름다운 강과 호수도 볼수 있었다.

처음 암각화 지대에 도착한 울기 아이막 차강골의 한 자락에는 맑은 시내가 흘렀다. 시냇가 일대는 키 작은 꽃이 아름다웠다. 시냇가에는 파란 풀이 뿌리를 적시며 부드럽고 촘촘히 자라고 있었다. 드러눕고 싶은 풍경이었다. 물에는 예쁜 수초들이 자라고 작은 물고기들이 그 사이를 헤엄쳐 다녔다. 해발 2천m 지점의 8월은 우리로 치면 초봄의 풍경이었다.

한가로운 기분속에 쇠똥을 서너개 주워 불을 피웠다. 향기가 좋았다. 이 일대는 허브가 곳곳에 자랐다. 미풍이 불면 향기가 전해졌다. 적당한 수분과 찬 기운을 품은 공기 맛은 삽상했다. 음식과 보온이 완비되면 더 없이 쾌적한 장소일 것이다.

이 곳의 풀을 뜯어먹은 소의 똥조차 그런 향기를 품은 듯 여겨졌다. 어느 몽고인 학자는 외국 갈 때 마른 쇠똥 몇 무더기를 가방에 담아 간다고 한다. 몰래 불을 피워 그 향기를 마셔야 안정된다는 것이었다.

강이나 시내가 흐르는 곳 주변은 어디서나 쾌적했다. 수분만 적당히 있다면 평화로운 초원이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곳은 이 나라 전체 국토에서 많지 않아 보였다.

이곳의 날씨변화는 여우변덕처럼 했다. 하루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 날씨가 교차되기 일쑤였다. 바람의 세기는 지구자전 속도를 반영하듯 셌다. 그 바람에 비구름이 쏠려왔다 사라지고, 비와 우박이 교대했다. 햇빛은 강렬했다. 산에는 눈이 쌓였다가 햇빛이 나면 다시 녹아내렸다.

모든 산은 거칠었다. 안산암 계통의 바위가 풍화돼 삐죽한 부스러기를 만들어냈다. 그래도 이 나라 산은 몰리브덴이나 구리 광맥이 많아 세계 10위의 자원부국이다. 산에는 서북쪽 비탈에만 나무가 자랐다. 해뜨는 반대 방향이어서 눈 녹은 물이 비교적 오래동안 천천히 흘러내려 수목이 자랄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는 가문비나무 계통이었다. 몽골주민은 ‘검은 나무’란 뜻의 ‘가라 하르’라 했다. ‘검은’과 ‘가라’는 말뿌리가 비슷했다. 나무는 아랫부분이 윗부분에 비해 통통했다. 어릴적부터 세찬 바람에 견디며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나무들은 유목민들이 겨울을 나기위해 쓰는 집의 벽체로 쓰였다.

알타이에서 본 다리는 모두 나무로 건축됐다. 길이 100m나 되는 어떤 다리는 1964년에 건설된뒤 아직 무너지지 않고 사용됐다. 물이 세차게 흐르는 강에는 나무로 된 교각이 놓였고, 교각의 앞 부분은 유선형이고 뒷 부분은 사각이었다. 마치 신라때 만든 경주의 월정교 석재 교각과 같은 형태였다.

하천은 대부분 여러가닥의 뱀허리를 꼬아놓은 것처럼 사행천이었다. 이런 하천과 산 골짜기에는 유목민들의 겨울집이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볼때는 집하나 없어보였지만 골짜기와 하천변에 어김없이 외딴 집이 있었다. 이들 집들은 강렬한 태양빛을 모아 전력을 생산하는 시설들이 갖춰지고 있었다. 그 전력으로 텔레비전이며 냉장고를 사용했다.

2주일 뒤 답사여행이 끝나면서 울란바타르로 돌아오는 길에 체르빈도르지 박사가 ‘몽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생태와 문화가 조화로운 나라가 될 것 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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