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정책의 기조는 한마디로 ‘수출 드라이브’다. 국내생산이 취약한 품목, 특히 식량의 경우 수출로 번 돈으로 수입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견고한 원칙이 밑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세계적·국제적 상황의 급변이 그 원인이다.
한국에 식량을 수출하는 주요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다. 특히 식품 또는 사료로 활용되는 밀가루와 옥수수는 미국산이 거의 대부분이다. 한·미 FTA 발효 이후엔 쌀과 쇠고기와 과일까지 우리네 식탁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국내 관련산업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도차이는 있지만 우리네 식탁을 농단하기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산 채소류와 어류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국내 시장을 좌지우지할 정도가 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채소류 수입액 비중은 1992~1994년 평균 3.6%에서 2008~2010년엔 평균 21.7%로 껑충 뛰었다. 한·중 FTA가 체결되면 그 수입량이 급증할 것이란 견해도 나와있다.
문제는 미국이나 중국에서 수입하는 식량자원의 대부분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 품목이란 점이다. 전문가들은 올여름의 기상이변이 연말 물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유럽발 경제위기는 수출입국(輸出立國)의 기둥뿌리마저 무너뜨려 한국경제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 EU 및 영국, 핀란드, 호주, 일본, 싱가포르 등 선진 8개국의 ‘장기전략 보고서’를 검토한 끝에 ‘장기전략국’을 신설, 9월 중 핵심 정책과제를 포괄하는 장기전략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책기조나 당국의 인식으로 볼 때 식량안보에 관한 미래전략을 제대로 세울지 어떨지는 미지수다. 국가의 안보를 좌우하는 것은 외교·국방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이 점에 유념해서 지금부터라도 식량안보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