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교사의 디지털 아이들 따라가기
아날로그 교사의 디지털 아이들 따라가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8.1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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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도 무더위가 심한 날들이 계속됐다. 잠깐 동안의 외출에도 땀을 한 바가지 흘린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한 무더위였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무더위로 인한 농작물과 가축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근으로 태풍이라도 불어와서 시원한 바람과 빗줄기를 알맞게끔 내려주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무더위 속에서 학교는 방학기간이라 아이들이 더위에 지친 몸으로 한 숨을 내쉬지 않아도 된다. 방학하기 직전 무더위가 시작되어 더위에 지친 아이들의 눈빛을 볼 때면 애처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웃음도 슬며시 나오게 된다. 더워서 괴롭다며 ‘선풍기’며 ‘에어컨’을 외치던 아이들도 점심시간이 되면 우르르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 땀을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땀으로 목욕이나 사우나를 한 것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쉴 새 없이 땀방울이 비 오듯 솟아지는 모습에는 저절로 웃음이 나오게 된다. 그래도 뭐가 좋은지 “선생님, 제가 한 골 넣었어요!”라며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자랑할 때면 꼬옥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물론 교실마다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만 전기요금이 감당하기 어려워 시간대별로 가장 무더운 시간에 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좀 더 시원하게 틀어달라는 아이들의 애처로운 무언의 눈빛에는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된다.

학기 중 아이들에게 좀 더 다가가고 수시로 교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떠올렸던 적이 있다. 그래서 무료통화 앱으로 유명한 카톡과 카카오스토리를 설치하고 아이들과 친구맺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못한 카카오스토리에 내 이야기를 적어 올리는 것이 낯이 간지러워 애써 올린 글과 사진을 지우기도 하고, 어떤 때는 프로그램 자체를 삭제한 적도 있었다(다음날 다시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말았지만). 그러다가 아이들과 주고받는 쪽지 글을 통해 아이들에게 조금씩 다가가고 있음이 느껴지고, 어느새 다른반 아이들까지 친구요청이 몰려오는 것을 보면서 디지털 세대의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발걸음에 대한 고민까지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카카오스토리를 하다보면 아이들끼리의 다툼이나 갈등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모습과 어떤 직업이 자기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지 물어보는 설문글까지 올리는 경우를 보게 된다. 아직까지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단축어나 아이콘, 이모티콘을 다 몰라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는 초보 스마트폰 사용자지만, 이런 작은 노력들이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소중한 매개체가 된다고 생각하니 흐뭇할 따름이다. 친구랑 다투고 난 뒤 속상한 마음을 거칠게 표현한 글이 올라올 때면 가슴이 철렁하게 된다. 그럴때면 살며시 문자로 노크해 본 후 속상한 마음을 어루만지고 달래준 후, 거칠게 표현한 글을 지우거나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해서 올려주면 좋겠다는 요청에 흔쾌히 받아주는 아이의 모습을 접하게 되면 흐뭇한 마음에 아이스크림 데이트를 신청하기도 했다.

얼마전에는 카카오스토리에서 주고받는 말이 지나쳐서 ‘왕따’얘기까지 나와 부모님들의 갈등으로까지 비화돼 양 쪽 부모님을 따로 만나 이야기를 듣고 놀란 가슴을 가라앉혀 드린 적이 있었다. 아이들의 스마트 화되어 버린 언어습관과 그에 익숙하지 못한 어른들과의 이해의 폭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어른들에게는 깜짝 놀라고 충격적인 단어들도 아이들에게는 그저 의미가 조금 센 단어 정도로만 인식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아날로그 세대의 교사들 또한 디지털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저만큼의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 됐다.

며칠 전 집안 사정이나 부모님이 바빠서 휴가를 못 가는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물놀이장에 가서 신나게 놀게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좋아하는 스마트폰을 꺼내지도 않은 채, 아침에 들어간 물놀이 장에서 해질녘까지 나오지 않고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오로지 물과 친구만 있어도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처음 욕심대로 아이들은 쉬지도 않고 지칠 때까지 신나게 놀았다. 어릴 적 방학이 되면 개울가에서 하루 종일 있어도 지겨운 줄 모르고 신나게 놀았던 그때의 추억처럼.

아날로그 교사가 디지털 세대의 아이들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디지털화 돼가는 아이들에게 예전 세대의 놀이방법과 친구들과 더불어 지내는 방법을 알게 해 주는 것이 어쩌면 더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깨달음을 무더운 여름철에 아이들과 부딪히면서 배우게 됐다.

<김용진 화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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