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갈치·전복·군소 떼거리
열기·갈치·전복·군소 떼거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8.1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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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생물들은 떼를 짓는다. 먹이사슬의 하위에 있는 존재는 주로 공 모양을 만든다. 가령 청어는 둥근 공모양을 만드는데 범고래가 한입 베물어 균형이 깨져도 금방 공의 형태를 회복한다. 거기에는 생존의 자연법칙이 있다.

시원한 물속에서 떼를 짓는 해산생물의 생태를 소개한다. 필자가 듣고 본 얘기다.

“내가 바다 속에서 단풍을 본 기라. 환장할 듯이 아름답다케야 겠제. 수많은 노란 잎들이 나풀거리는 거야. 파란 배경 속에 온통 노란 나뭇잎들이 파들파들 나부끼는 거. 그것도 수백미터 떨어진 곳에서 잎이 떨어지듯 눈앞에 나가오는데…”

그는 얘기를 풀어내기 벅찬 듯 말을 더듬거렸다.

“알겠는데, 바닷속에 웬 단풍이야, 그리고 해류가 심한 바다에서 수미터도 보일까말까한데 수백미터라니?”

“아이다. 청수라는게 있다. 일년에 한번 볼까말까 한데, 낮인데도 육풍이 불때지. 울산쪽에서는 서풍이 불때 드물게 생기는 현상인데 그때는 멀리까지 물속이 훤한기라”

“그래서, 단풍의 정체는?”

“허참, 그게 고기떼 인기라. 내 눈앞을 스쳐갈 때 보니까 열기떼더라구. 수천마리 아니 수만마리가 한꺼번에 몰려 지나가는데…”

형용하기 벅찬듯 말문이 잠시 막혔다. 그는 머구리, 그러니까 잠수부였다. 온산 앞 바다에서 오랫동안 잠수어업을 했다.

어부들이 들려주는 특이한 경험은 한편의 시적 영상이다.

열기는 수심 30m 바위 위에 층층히 무리를 짓고 있다. 지느러미조차 꼼짝하지 않고 머문다.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처럼. 그러면서 에너지 손실을 줄이는지 모른다. 노란색을 띠는 열기가 파란물색에 비치는 모습이 마치 꽃처럼 화사하기에 ‘열기가 핀다’고 형용한다. 어부들은 시인이다.

갈치떼의 춤을 본적있다.

온산읍 우봉의 선착장이 매몰되기 전이다. 그날 저녁 해가 막 넘어간 어둠속에 등불 하나가 선착장 끝 물가에 걸쳐있었다. 어부가 그물질을 했다. 불빛을 보고 찾아온 멸치를 건지고 있었다. 그물질 틈 사이로 갈치떼가 하얀 비늘을 반짝이며 몰려들었다. 멸치를 잡아먹으려는 것이다. 파도에 일렁이는 멸치를 포식하기 위해 수십마리의 갈치가 물밑에서 위로 솟구쳤다 가라앉았다는 반복했다. 육지에서 갈치가 세로로 서서 춤추는 것을 볼 수 있는 기막힌 장면이었다.

얼마뒤 커다란 한치가 두 마리 나타났다. 하얀 박격포탄처럼 생겼다. 이 녀석들 역시 멸치를 먹으려고 등장했다. 이 녀석들의 느린 동작이 어민들에게 포착됐다. 두 마리가 포획됐다. 그날 이 어항은 살이 통통한 한치회로 잔치를 벌였다.

갈치나 한치의 표적이 되는 멸치떼의 군무를 보면 환상적이다. 마치 소나기 또는 눈송이가 떨어지는 것 같다. 먼저 무수한 까만 점이 시야에 들어온다. 멸치떼의 눈이다. 그런뒤 투명한 살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온산읍 강양 앞 밤바다에 가면 밝은 빛을 쏘며 떼를 지어 달리는 배들을 볼 수 있다. ‘멸치챗배’다. 회야강 하구에 밀려온 육상부유물질을 먹기위해 몰려다니는 멸치떼를 그물로 뜨는 어업이다. 어부들은 노련한 솜씨로 멸치를 잡은뒤 뜨거운 물에 삶아 말려 우리의 식탁에 올린다.

온산읍 강양과 우봉 사이 바다에 갓바위가 있다. 어민들은 보통 ‘갑바’라고 부른다. 한 어부가 이 바위 옆 수심 10m 속 바위인 여(礖)에 어른 손바닥 크기의 전복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 얘기를 생생하게 들려줬다.

전복은 바닥이 모래인 곳과 해초가 많은 암반의 경계를 이루는 독립된 바위에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잘 모른다. 그런 장소를 ‘지급’이라 부른다. 조만간 매립될 강양우봉 바다에 지급이 있는 것이다.

이 바다에서 이따금 군소떼를 만났다. 군소는 뿔모양과 몸집이 소처럼 생겼다. 이때 ‘군’은 ‘쓸데없는, 가외로 더한’ 뜻이다. ‘군것질’과 ‘군소리’의 그 ‘군’이다. 동해안 어민들은 군소를 ‘군수’라고 부른다. 군소는 ‘줄군수’ 또는 ‘열군수’라고도 불린다. 무리지어 발견되기 때문이다. 초심자는 물렁거리는 몸체와 보랏색 보호색에 질겁하지만 제삿상의 필수품일 만큼 조상들이 즐기던 해산생물이다.

떼거리는 뭔가 넉넉하다는 것을 뜻한다. 해산생물의 떼거리를 만나는 것은 수렵어로가 시작된 이래 인류 본능에 각인된 영원한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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