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아름다움
상식의 아름다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8.09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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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개교 첫 해 유니스트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개교하는 학교가 으레 그러하듯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 못지않게 보람 있는 일도 많았던 시기였다. 가끔은 학생들에게서 감동을 받기도 했는데, 지금도 어제처럼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지금은 기숙사에서 생활하지만, 첫 해 학생들은 학교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었다. 그 해 봄, 비 내리는 아침, 출근을 하면서 한 정류장을 지나게 되었다. 정류장은 등교하려는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비가 오는 통에 더 혼잡했다. 그런데 정류장 한 켠, 한 여학생이 우산을 든 채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아무도 책을 읽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그 여학생 한 명 뿐.

하얀 칼라가 정갈한, 열정과 냉철함이 기묘하게 조화를 이룬 그 모습에 다른 모든 것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너무나 인상적인 장면이어서 그것 외에는 보이지 않는 그런 느낌. 나도 모르게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뒤차의 경적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 여학생은 학교 버스를 기다리던 외고 학생이었다.

이 년 여가 흐른 지금, 우산을 든 채 책을 읽던 그 여학생은 입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아마 그 때를 기억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 날의 기억이 어제처럼 남아 있다.

학생이 틈나는 대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즉 상식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왜 그리 감동적이었을까? 그건 아마 당연하다고 생각해 오던 상식적인 일들을 실제로는 쉽게 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시되고 버려지는 상식이 여전히 유효하며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언의 합의에 의한 상식들이 언제부턴가 보기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교육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가릴 것 없이 상식은 무너지고 있고, 궤변과 편법에 의해 뒤틀리고 오염되었다.

세상에는 힘의 논리에 의해 선악이 가름되는 상황 논리만이 살아남고, 상식이나 원칙 따위는 곰팡내 나는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되고 말았다.

어떤 사람은 이런 주장을 한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굴원 고사의 어부처럼, 인간은 본질적으로 부조리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을 수용하고 살 수 밖에 없다고. 기본적인 상식이나 원칙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 부조리한 존재라고 해서 부조리 그 자체를 긍정할 수는 없다. 절대적 상식이나 원칙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 상식이나 원칙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모든 문화와 법률은 존재할 가치가 없을 것이다. 인간이 존엄한 것은, 굴러 떨어질 것을 알지만 다시 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본질적 부조리를 인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식은 아름다운 것이다. 비 오는 날 책을 읽던 그 여학생처럼 말이다.

<조기환 울산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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