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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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8.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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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눈으로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런던 올림픽도 어느새 2주 일정의 반환점을 훌쩍 돌아섰다. 대한민국 선수단이 내걸었던 ‘10-10’ 목표도 진종오 선수가 5일 남자 50m 권총 결선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조기 달성에 성공했다.

일주일 남짓 지나는 사이 우리는 실로 대단한 경험들을 릴레이식으로 맛보았다. 가장 짜릿한 감격 중의 하나는 ‘카디프의 쇼크’였을 것이다. 5일 새벽 웨일스의 수도 카디프에서 축구 종주국이랍시고 어깨에 힘을 잔뜩 주던 영국 단일대표팀을 우리의 태극전사들이 보기 좋게 물리치고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룬 것은 엄청난 쇼크이자 일대 사건이었다.

어디 카디프의 쇼크뿐이었겠는가. 수영의 박태환, 유도의 조준호, 그리고 여자펜싱의 신아람 선수가 삼킨 울분의 눈물은 텃세에 의한 ‘오심(誤審) 시리즈’의 결정판이었다. ‘필승 코리아’의 국민적 함성은 분노로 들끓었고, 세계 스포츠계는 모처럼 낯 뜨거운 치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런던 올림픽을 오죽하면 ‘랜덤(random) 오심픽’이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을까. (random= 임의의, 닥치는 대로의, 마구잡이의)

이 문제는 6일 이명박 대통령이 행한 제95차 라디오·인터넷 연설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대통령은 “이번 올림픽은 영광의 순간만큼이나 안타까운 일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유도의 조준호 선수에 대해 대통령은 “‘경기에 최선을 다했고 판정은 심판이 하는 것이니 선수로서 결과에 승복한다’고 했지만, 솔직히 저 개인적으로는 그 판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또 수영의 박태환 선수에 대해서는 “만약 400m 예선에서 실격 문제가 없었다면 틀림없이 우승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했다.

올림픽에 즈음해서 청와대뿐만 아니라 여러 통로를 통해 좋은 말들이 많이 나왔다. 어떤 분은 이런 말을 남겼다. “승패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상식을 확인하며 스포츠를 즐기십시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쿠베르탕(Pierre de Couberttin, 프랑스, 1863~1937)은 일찍이 이런 명언을 남겼다. “올림픽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고 참가하는 것이다.”

모두 옳은 말씀이다. 하지만 유독 우리 대한민국 선수단을 향해 쏟아진 것 같았던 오심 시리즈는 ‘스포츠계의 공자’ 쿠베르탕의 말씀을 아무리 되뇌어도 분이 쉬 풀리지는 않는다. 특히 주·부심 모두가 들어준 조준호의 손에 못질까지 해댄 일본인 심판위원장의 석연찮은 판정 번복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는 정서가 지배적이다. 한마디로, 신성해야만 할 올림픽의 제전에서 ‘상식’이 설자리를 잃고 말았던 것이다.

가소로운 것은 ‘유도 종주국’임을 내세우는 일본인 심판위원장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다. 그는 판정 번복의 이유가 ‘올림픽 정신’에 있다고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내뱉었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헛소리와 무엇이 다른가. 순진한 소도 되새김질하던 여물을 토해내고 웃을 일”이라고 비꼰 한 네티즌의 비판을 그는 알고나 있을까.

오심 논란에 휩싸인 올림픽 관계자가 ‘올림픽 정신’ 운운한다는 것은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위선이다. 그 이면에는 분명 꼼수와 로비가 숨어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그 숱한 하계·동계 올림픽 혹은 월드컵의 개최지가 순도 100%의 ‘스포츠 정신’에 입각해서 결정된 사례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는 당시 IOC위원을 비롯한 대한민국 체육계 지도자들의 공이 컸고, 2002년 한일월드컵 유치는 당시 FIFA 부회장이었던 정몽준 국회의원의 공이 컸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에 속한다.

이번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에게 가혹하리만치 엄격했던 일련의 심판행위는 무슨 의미를 지닐까. 혹자는 ‘종목별 영향력을 가진 나라의 로비나 편견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대한민국 대 영국대표팀의 축구 4강전에서 보여준 콜롬비아 심판의 페널티킥 판정에 주목한 한 시민은 ‘일리 있는 이야기’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스포츠도 넓은 의미의 ‘정치’ 개념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이 있다. 정치행위가 지구촌 스포츠계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학문의 범주에 ‘스포츠정치학’을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적지 않은 문제가 풀릴 수도 있을까. 우리의 여류검객 신아람에게 ‘특별상(페어플레이상?)이나 받고 말아라’는 국제펜싱연맹(FIE)의 제안이나 ‘공동은메달을 달라’고 떼를 쓴 대한체육회의 엉뚱한 태도를 학문적으로 규명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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