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부르투스 정녕 너마저 공천헌금을
아! 부르투스 정녕 너마저 공천헌금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8.0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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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입추 말복이 지나면 이 살인적인 폭염도 지나갈 것이다. 연일 수은주는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지만 저녁 무렵 자지러질듯 울어대는 매미 울음도 이제 소리도 폭염 더위가 물러감을 예고하는 한여름 밤 축제의 피날레에 불과하다. 더하여 런던 올림픽 현장에서 들려 온 축구 종주국 영국을 격파하고 4강으로 내달았다는 승전보와 금빛뉴스는 지친 민초들에겐 더 없는 청량제다. 소박한 서민의 행복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다. 제 일이 아닌데도 미친 듯 기뻐하고, 제 돈 내고 생맥주 한 바가지 들이키고는 이사람 저사람 안 가리고 부둥켜안고 웃고 우는 것이 민초들의 삶이다.

하지만 이런 소박한 서민의 순간적인 행복에 기어이 열(熱)바가지를 퍼 부어야만 직성이 풀리는가.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한국 정치여. 어찌 이리도 못났단 말인가.

낭보에 찬물을 끼얹는 집권여당의 공천헌금 소문에 경악한다. 역대 선거후에 어김없이 터져 나왔던 공천헌금. 말이 좋아서 헌금이지 현대판 매관매직에 ‘금딱지 장사’란 말 말고는 더는 붙일 말이 없는 공천에 얽힌 ‘돈 주고받기’에 대한 추악한 소문을 다시는 안 들어도 되는 줄 알았는데 순진한 우리들 ‘영구’만 또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21세기 밝은 세상에 오천만 인구 가운데 300명을 가려 뽑는 국회의원 자리를 돈으로 어찌해보려는 수작을 부렸으니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다던 조선조 철종 무렵의 벼슬자리 사고팔기는 차라리 애교에 불과하다. 결코 비밀이 없다는 이 대명천지에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보다 더 큰 대 국민 사기극은 있을 수가 없다.

잠시 지난 4월 총선 이전으로 돌아가 보자. 집권여당의 국민지지율은 밑바닥을 기고 있어 그 누구도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성급한 이들은 한나라당이 다시 과반석을 차지하는 원내 다수당이 되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고도 했을 것이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은 지금의 새누리당으로 문패를 갈아달고 비상체제로 돌입, 구태정치를 일소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했다. 쇄신이란 구호를 독점하며 국회의원 후보자를 내는 공천부터 엄정공정 투명하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공천제도에 기생한 우리정치의 뿌리 깊은 병인 공천 뒷거래 돈 주고받기는 언감생심 전설에서나 들으라는 듯 깨끗함을 다짐하며 국민들의 소매를 잡고 매달렸었다.

국민들은 대쪽을 무색케 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원칙주의와 진정성을 믿었다. 운도 따랐던지 그나마 대안이 되기를 바랐던 야권 연합이 거듭 헛발질을 해대는 틈새에서 새누리당은 기사회생을 하여 차기대권 후보 중 부동의 일등자리를 달리는 후보를 가지고 재집권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이미 공천당시에 우려했지만 뒷전으로 밀려버린 일들이 지금 엄청난 후폭풍이 되어 되돌아오고 있다. 투명성과 원칙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 덫에 걸리기 십상이다. 당시 새누리의 공천심사는 그다지 투명하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고 원칙은 곳곳에서 대상 인물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선정국을 염두에 둔 제 편 거두기도 더러 보였던 게 사실이다. 지역구 공천에 탈락해도 비례대표가 될 수 있는 쪽문을 열어 둔 것 또한 석연치는 않았다. 결국 그 쪽문에서 사고가 터졌다. 갈등의 당사자로 지목 된 친이계 공천영향력자의 이니셜로 회자될 만큼 실권자 측근 사람들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경상도 식으로 우려한 가가 가가되었다. 당시 공천 분위기를 실감한 경험으로 보면 올 것이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칙을 믿은 국민은 허망하다. 투명성을 외치던 사람들의 장막 뒤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두렵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악어의 눈물보다 진정성이 없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정치는 조직이다. 연좌제는 없어야 하지만 조직인 이상 연대 책임은 있어야 한다. 모두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가혹하다. 다만 정치의 성격은 여느 일과 달라 국민 앞에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다. 관리에 대한 책임은 한계를 두어야 하지만 면책은 아닌 것이다. 민주주의 나라에서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맡긴 정당이나 권력자는 시저가 양아들로 믿었던 부르투스에 대한 믿음에 버금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터져 나오기 시작한 정치권의 선거전후 돈 주고받기, 아 부르투스여 정녕 너마저도, 공천헌금을! 황금빛 낭보가 날아드는 새벽녘에 나에게 칼을 겨누는 부르투스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덥다.

박기태 전 경주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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