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마쯔리’ 그리고 중구 문화축제
일본 ‘마쯔리’ 그리고 중구 문화축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7.3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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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일부터 시작된 일본 교토 기온 마쯔리가 오늘쯤 끝난다. ‘마쯔리’란 한자로 제(祭)란 뜻이다. 그래서 이 의식은 글자 그대로 신(神), 특히 역신(疫神)에게 제사를 올리는 일종의 종교행사에서 비롯됐다. 현재 일본전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마쯔리는 약 2천400개 정도인데 그 효시가 바로 교토 기온 마쯔리다.

일본 헤이안(平安)시대(794~1185년) 수도였던 교토(京都)지방에서 발생한 역병을 물리치기 위해 869년 한 사찰이 제사를 봉행하면서 시작된 것인데 이후 가마쿠라 막부(1185~1333년)시절 하카다 야마가사 마쯔리(1241년), 도쿠가와(德川) 막부시절 도쿄 간다 마쯔리(1603년) 등으로 발전했다.

기온 마쯔리가 시작된 일본 헤이안 시대는 우리의 통일신라 후반기와 비슷하다. 귀족·불교문화가 절정을 이뤘다. 또 고대를 벗어나 중세로 진입하던 시기인 만큼 대외적으로도 독자성을 추구했다. 일본의 전통 여성복장인 ‘기모노’, 백분(白粉) 화장술, 일본 고유의 정원(庭園)조성, 전통 무기 등도 모두 이 시대의 산물이다.

그런 탓인지 지금도 교토 기온 마쯔리와 가마쿠라 막부 시절의 하카다 야마가사 마쯔리는 사뭇 다르다. 기온 마쯔리는 가마꾼들이 ‘가자리 야마’라고 하는 장식가마를 메고 천천히 시가지 일원을 행진한다. 정적(靜的)인 면이 강하다. 기온 마쯔리가 절정에 달한 지난 16일 밤 교토 중심가 일대는 차량통행이 완전히 차단됐다. 수만 명에 이르는 20~30대 젊은이들이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채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축제 분위기를 돋웠다. 우리나라 축제의 주축이 주로 40~50대 인 점과 비교하면 생경한 사실이다.

반면에 가마쿠라 시절부터 시작된 하카다 야마가사 마쯔리는 일본 ‘훈도시’를 입은 수십명의 젊은이들이 2~3톤에 이르는 야마카사(장식가마)를 메고 뛰는 것이다. 약 500명이 그 뒤를 따른다. 역동적이다 못해 호전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지난 15일 새벽 이 행사에 참가한 야마카사만 무려 10개다. 그러니 그날 행사에 참여한 가마꾼만 줄잡아 5천명인 셈이다. 이들이 시내 일원을 경쟁하듯 달리며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은 손에 칼과 창만 들지 않았지 막부시절 사병(私兵)집단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소 다르긴 하지만 일본 마쯔리는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철저히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꾸려 나간다는 점이다. 우리처럼 지자체가 주관하고 지원하는 법이 없다. 기획에서부터 시행까지 모든 것을 지역사회, 특히 주변 상인회가 주도한다. 그런 가운데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가 형성되고 일본 특유의 결집력이 생긴다.

다른 한 가지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20~30대 젊은이들이란 사실이다.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교토 중앙로를 꽉 메운 사람들도, 새벽 4시 하카다 야마카사 마쯔리를 구경 나온 사람들도 대부분 20~30대 들이다. 40~50대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우리보다 훨씬 서구화 된 일본 젊은이들이 이 축제를 주도한다는 사실은 좀체 믿기 어렵다.

일본은 마쯔리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겨 나가기 위해 자신들의 투쟁적인 기질을 안으로 연마하고 있는 중이다. 외면적으론 소규모인 일본 자위대가 언제든지 대군(大軍)으로 바뀔 수 있는 것과 흡사하다. 생활양식은 거의 서구화됐지만 정신은 여전히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막부, 도쿠가와막부 시절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2톤이 넘는 장식가마를 메고 달리는 젊은이들과 이들의 땀을 식혀주기 위해 가마 위에서 물을 끼얹는 기성세대가 함께 어우러져 움직이는 게 바로 일본 마쯔리의 본질이다.

하카다 마쯔리가 역병을 쫓기 위해 시작됐다고 하나 사실은 외침(外侵)에 대비한 내부 단결용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카다 야마카사 마쯔리가 시작된 해는 1241년이다. 이때는 이미 몽고가 일본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강요하고 있던 시기다. 그 뒤 1274년 고려·몽고 연합군이 대마도를 정벌하고 지금의 후쿠오카 하카다를 점령했다. 그러니 당시 역신퇴치를 이유로 미리 내부결속을 강화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런 과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 하카다 마쯔리의 기원이라면 중구 문화축제도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을 그 바탕으로 삼을 만하다. 한바탕 놀이마당으로 끝낼게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을 발굴해 그 신기원으로 잡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 당시 울산사람들이 왜군에 항전했던 사실 가운데 몇 개를 구체적으로 발굴해 반영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동시에 그 주축을 점차적으로 지역민들과 젊은이들에게 맡기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어떨까.

정종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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