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사로 가기 위해 달리다 보면 낙양 시내를 벗어난 한적한 길가에 백마사가 있는데 바로 중국 최초의 사찰이다. 이 절의 입구에 백마 석상이 하나 서 있는데 매우 인상적이다. 그리고 오래됐지만 단아한 모습으로 보존된 절이 주는 엄중함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특히 모란이 피는 봄날 이 절에서 펼쳐지는 모란축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작고 오래된 절이 가진 자존심과 함께 낙양을 상징하는 꽃인 모란은 세계의 불자를 불러 모은다.
낙양의 남쪽 이수강변에 용문석굴이 있다. 이 석굴은 북위시대부터 수, 당에 이르기까지 조성된 불상 10만여기가 거대한 바위벽에 빼곡하게 남아있다. 중국의 3대 석굴의 하나인 용문석굴의 ‘봉선사 비로자나불’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용문석굴 주변은 요란스럽지 않다. 이수 강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석굴을 탐방할 수 있는 길만 만들어 두고 별다른 치장을 하지 않았다. 입구에 상가나 필요없는 시설물을 두지 않아 용문석굴이 가진 장중함에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
낙양고성 밖 신시가지에는 1973년에 생긴 하남성 낙양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는 낙양근교에서 발굴한 하남앙소문화의 토기, 서주시대의 청동기와 차마구(車馬具), 한대의 명기와 벽화, 특히 세계 도자문화의 백미라고 일컬어지는 당삼채용(唐三彩俑)이 전시돼 있다. 그러나 이 박물관은 마치 허름한 시골학교처럼 소박하다. 낙양이라는 도시의 전체 분위기와 어울리는 낮고 격조 있는 건물은 박물관이 보유한 유물을 돋보이게 한다.
백마사, 용문석굴, 낙양박물관. 나는 이 도시를 두 번 정도 여행했고 이 세 곳을 잊지 못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곳이 가진 의미는 그 어떤 유적, 유물보다 컸으며 소박하고 정갈한 모습이 오랜 울림으로 남아있다.
물론 외양이 호들갑스러운 유적들도 있다. 유럽의 사례가 그렇다. 그러나 유럽은 건물 자체가 유적이고 보물이다. 새로 세우는 건물도 훗날 문화재로 여길 수 있도록 긴 안목으로 설계하고 건축을 한다. 부러운 대목이다.
우리는 어떤가. 일단 모든 시설을 새로 세울 때 주변 환경과의 조화, 경관적 고찰, 실용성 등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듯하다. 그래서 실패한 건물들이 어디 한 둘인가. 특히 문화시설을 세울 때 그렇다. 그 도시의 성격과 문화적 정체성, 심지어는 기후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서양의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의 건물을 짓는다. 한국의 건물인지 어느 서양의 급조된 건물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건물의 외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속에 담길 내용물이다. 물론 건물 자체가 예술적이고 문화재적 가치를 갖는다면 금상첨화다. 우리의 독자적 창의력과 안목으로 건물을 만들고 그 속에 진정성 있는 내용물을 채워 나가야 한다. 무조건 엄청난 예산을 들여 대규모의 건축물을 짓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그 예산으로 내용물을 채워나간다면 그 효과는 더 크다.
울산은 곧 시립미술관의 입지를 정하고 건축물을 구상해야 한다. 현대의 미술관이 갖는 특징은 그 자체로 예술이어야 한다.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형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작지만 아름다운 우리의 미술관을 갖고 싶다. 그리고 그 미술관 안에 풍부하고 실속 있는 프로그램을 채워야 하며, 자랑스럽게 내세울 소장품도 마련해야 한다. 허세가 통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낙양의 작은 박물관 안에 전시된 그 아름다운 유물을 보면서 낙양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적 저력을 부러워했다. 울산은 그 같은 콘텐츠가 없다. 그러나 젊고 희망찬 도시 울산의 미래를 담보할 미술관을 만들 수는 있다. 그 속에서 문화 한국을 빛낼 창의적인 화가가 자라날 수 있고 예술에 영감을 얻어 인류의 미래를 개척할 과학자가 탄생할 수도 있다. 많은 도시들이 실패한 시립미술관의 선행 사례를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