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있는 미술관을 기다리며
실속있는 미술관을 기다리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7.24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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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하남성 낙양시는 우리에게 친숙한 도시다. 동양사에 수시로 출몰하는 이 도시는 한나라, 위나라, 수나라, 당나라 시대의 수도였다. 선사시대부터 앙소문화의 중심지였던 낙양은 후한시대 처음 불교를 받아들인 도시다.

소림사로 가기 위해 달리다 보면 낙양 시내를 벗어난 한적한 길가에 백마사가 있는데 바로 중국 최초의 사찰이다. 이 절의 입구에 백마 석상이 하나 서 있는데 매우 인상적이다. 그리고 오래됐지만 단아한 모습으로 보존된 절이 주는 엄중함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특히 모란이 피는 봄날 이 절에서 펼쳐지는 모란축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작고 오래된 절이 가진 자존심과 함께 낙양을 상징하는 꽃인 모란은 세계의 불자를 불러 모은다.

낙양의 남쪽 이수강변에 용문석굴이 있다. 이 석굴은 북위시대부터 수, 당에 이르기까지 조성된 불상 10만여기가 거대한 바위벽에 빼곡하게 남아있다. 중국의 3대 석굴의 하나인 용문석굴의 ‘봉선사 비로자나불’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용문석굴 주변은 요란스럽지 않다. 이수 강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석굴을 탐방할 수 있는 길만 만들어 두고 별다른 치장을 하지 않았다. 입구에 상가나 필요없는 시설물을 두지 않아 용문석굴이 가진 장중함에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

낙양고성 밖 신시가지에는 1973년에 생긴 하남성 낙양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는 낙양근교에서 발굴한 하남앙소문화의 토기, 서주시대의 청동기와 차마구(車馬具), 한대의 명기와 벽화, 특히 세계 도자문화의 백미라고 일컬어지는 당삼채용(唐三彩俑)이 전시돼 있다. 그러나 이 박물관은 마치 허름한 시골학교처럼 소박하다. 낙양이라는 도시의 전체 분위기와 어울리는 낮고 격조 있는 건물은 박물관이 보유한 유물을 돋보이게 한다.

백마사, 용문석굴, 낙양박물관. 나는 이 도시를 두 번 정도 여행했고 이 세 곳을 잊지 못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곳이 가진 의미는 그 어떤 유적, 유물보다 컸으며 소박하고 정갈한 모습이 오랜 울림으로 남아있다.

물론 외양이 호들갑스러운 유적들도 있다. 유럽의 사례가 그렇다. 그러나 유럽은 건물 자체가 유적이고 보물이다. 새로 세우는 건물도 훗날 문화재로 여길 수 있도록 긴 안목으로 설계하고 건축을 한다. 부러운 대목이다.

우리는 어떤가. 일단 모든 시설을 새로 세울 때 주변 환경과의 조화, 경관적 고찰, 실용성 등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듯하다. 그래서 실패한 건물들이 어디 한 둘인가. 특히 문화시설을 세울 때 그렇다. 그 도시의 성격과 문화적 정체성, 심지어는 기후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서양의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의 건물을 짓는다. 한국의 건물인지 어느 서양의 급조된 건물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건물의 외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속에 담길 내용물이다. 물론 건물 자체가 예술적이고 문화재적 가치를 갖는다면 금상첨화다. 우리의 독자적 창의력과 안목으로 건물을 만들고 그 속에 진정성 있는 내용물을 채워 나가야 한다. 무조건 엄청난 예산을 들여 대규모의 건축물을 짓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그 예산으로 내용물을 채워나간다면 그 효과는 더 크다.

울산은 곧 시립미술관의 입지를 정하고 건축물을 구상해야 한다. 현대의 미술관이 갖는 특징은 그 자체로 예술이어야 한다.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형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작지만 아름다운 우리의 미술관을 갖고 싶다. 그리고 그 미술관 안에 풍부하고 실속 있는 프로그램을 채워야 하며, 자랑스럽게 내세울 소장품도 마련해야 한다. 허세가 통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낙양의 작은 박물관 안에 전시된 그 아름다운 유물을 보면서 낙양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적 저력을 부러워했다. 울산은 그 같은 콘텐츠가 없다. 그러나 젊고 희망찬 도시 울산의 미래를 담보할 미술관을 만들 수는 있다. 그 속에서 문화 한국을 빛낼 창의적인 화가가 자라날 수 있고 예술에 영감을 얻어 인류의 미래를 개척할 과학자가 탄생할 수도 있다. 많은 도시들이 실패한 시립미술관의 선행 사례를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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