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줄 좀 섭시다
제발 줄 좀 섭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7.1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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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동유럽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국립부다페스트박물관. ‘헝가리 건국 1천년 기념 국제 타피스트리전’이 열렸다. 국제적인 타피스트리 작가들이 참석했고 그 행사에 상을 받는 작가들과 하객들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서 축사나 인사말을 한 사람은 단 두 사람, 박물관장과 문화유산부 장관이었다.

이날 행사장에는 당시 헝가리의 대통령이었던 페렌츠 마들도 참가했다. 페렌츠 대통령은 수상자들과 나란히 자리에 앉아 있었고 행사 내내 조용하게 박수치고 두 사람의 관련 기관장의 인사말을 경청했다. 행사가 끝나고도 전시장을 꼼꼼하게 둘러보고는 조용하게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일국의 대통령이 보여준 그날의 자세를 새삼 떠올려본다.

현재 우리의 각종 행사장은 어떤가. 서로 앞자리에 앉으려고 다툼을 하고 행여 축사에서 빠지면 섭섭해 하기 일쑤다. 정작 그 행사의 주인공들은 자리다툼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뒷자리로 밀려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행사는 막을 내린다. 얼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부류가 어떠한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

울산시는 지난 2010년 중앙의 의전관련 부서의 의전절차를 기초로 삼아 울산의 현실에 맞게 의전편람을 마련해 발간한 바 있다. 그 편람은 주요 기관장의 의전 예우는 어떠해야 하며 각종 행사에서 어느 손님을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사례 위주로 자세히 적고 있다. 그러나 울산시도 편람에 적시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기초적인 예시일 뿐 정해진 룰이 없다고 말한다. 참석 내빈에 따라 의전의 방법은 조금씩 바뀌며 행사의 성격에 따라 주인공을 우선적으로 대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울산의 대다수 행사에는 이 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축제행사에 울산 문화계의 수장은 뒷자리에 앉았고, 어느 누구도 자리 안내를 해주지 않았으며 세레머니가 끝나고도 안내를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행사를 주관하는 부서의 눈에는 한 분야의 대표자도 없었고 그 분야의 원로도 없었다. 특히 예술행사일 경우에는 더 가관이다. 예술가들은 그 흔한 꽃 하나 가슴에 달지 못하고 우울하게 들러리 선 채 배회하다가 퇴장한다.

이런 현실이 되기까지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얼굴 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투듯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야 여러모로 자신을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이 찍히고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를 높이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것을 가감 없이 보도하는 언론에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다른 하나는 행사를 주관하는 기관이나 단체의 ‘윗사람 눈치 보기’다. 누가 만든 서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암묵적인 순서가 존재한다. 자신이 모시는 윗사람과 관계있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예우하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행사가 시작될 무렵 자신들의 리스트에 올라온 사람들이 도착하지 않으면 기린목이 되도록 두리번거린다.

어느 지방도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도시의 시장님은 행사의 성격이 뭐였든 간에 그 도시에 하나 뿐인 종합대학교의 총장님을 자기보다 윗자리에 모셨다. 총장님이 입장하면 옷깃을 여미고 자신이 달려가 직접 영접하고 자리를 안내했다. 그 모습은 이 시대의 스승에게 극진한 의를 갖추는 지방 목민관의 반듯한 모습을 내보인 것이어서 참으로 오랫동안 회자된다. 그러나 그 예는 유감스럽게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기 전 임명직 단체장 시절의 얘기다.

자신이 나서야 할 자리와 양보해야 할 자리가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염치가 필요한 세상이다. 설령 자신의 자리라 하더라도 다른 이에게 먼저 내주던 것이 우리네의 미덕이었다. 마치 시장의 떨이물건을 먼저 사려고 다투는 아낙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원로가 윗자리에 앉고 주인공이 앞자리에 앉고 관련자가 우대되고 모든 행사의 절차가 그들을 위주로 만들어져야 그것이 반듯한 의전절차다. 권위주의가 횡행하는 행사에 그동안 푸대접 받았던 사람들이 일제히 보이콧을 한다면 그 감당을 어떻게 하려 하는가.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새치기 하지 말고 “제발 줄 좀 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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