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카페
고양이 카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7.15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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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세미나가 있어 서울에 다녀온 적이 있다. 중앙대학교에서 흑석시장으로 가는 길에 ‘고양이 카페’라는 특이한 가게가 있다. 이름하여 ‘책 읽는 고양이’다. 고양이는 열 두 마리이고 대부분 버려진 고양이이거나 파양(罷養)묘 또는 길고양이이다. 이 카페의 주인은 낮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잠자는 고양이를 깨우지 않고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공유하게 해 책읽기를 유도한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임에 틀림없다.

고양이라는 놈은 습성상 하루 평균 14시간 낮잠을 자는 잠꾸러기로 경우에 따라 20시간 이상을 자는 고양이도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약 1만년 전 근동(近東)지방에서 스스로 숲 속을 나와 인간들이 모여사는 마을에 대담하게 정착했는데, 여기서 길들여진 5마리의 아프리카 암컷 들고양이가 기원이라고 한다. 고양이는 인류로부터 오랫동안 애완동물로 사랑받아 왔던 대표적인 야행성 동물이다.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를 소개하자. 2009년 뉴욕타임스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됐던 ‘듀이(Dewey)’라는 고양이 이야기다. 미국 아이오와주 스펜서시(市) 도서관의 한 여자 사서(司書)가 출근 직후에 도서 반납 상자를 정리하다가 어떤 동물 소리를 듣는다. 조심스럽게 반납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조그마한 새끼 고양이가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생후 8주 정도가 된 이 고양이는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있었는데 그녀는 주위의 직원과 시를 설득해 도서관에서 키우기로 허락받는다. 이 도서관에서 20여년 동안 보낸 듀이라는 고양이 이름은, 주지하는 대로 도서 십진분류법 창안자의 이름을 본떠 만든 애칭이다. 듀이는 그 동안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줌으로써 기적 같은 일이 빈번히 일어나게 된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나 외로운 노인, 장애인들의 다리에 몸을 비비기도 하고 그들의 무르팍에 뛰어올라 잠을 청하기도 하는 등 웃음과 위안을 안겨주는 유일한 친구가 된 것이다. 또 평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그녀는 듀이와의 교감을 통해 삶의 의욕을 찾았을 뿐 아니라 도서관이 다시 살아남으로써 자기가 세상에서 최고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매우 기뻐한다.

한국에서는 고양이를 영물이라 해 기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일본에서는 좋은 동물로 여겨 고양이와 공동체 울타리 속에 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본문학을 보면 고양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일본의 만원권 지폐에는 일본문학의 셰익스피어로까지 추앙받는 소설가 나쓰메 소오세키(夏目漱石,1867~1916)의 얼굴이 인쇄돼 있다.

1905년 아사히신문에 발표한 그의 처녀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라는 작품이 있다. 중학교 영어교사이던 그가 이 작품으로 일약 문단에서 대스타로 발돋움한다. 첫머리를 펼쳐보면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로 시작하는데 고양이의 눈으로 통해 본 인간세계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현대 일본인들이 즐겨 읽는 소설이기도 하다. 고양이가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행동에 대한 해석 그리고 인간사회의 비판으로 이어지는 흥미로운 소재를 많이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잠깐 먼 나라의 재미나는 우화를 들어보면서 본론을 이야기하자. 어느 조그마한 동네에 고양이가 집단적으로 살고 있었다. 많은 고양이 중에서 유독 도서관으로 매일 출퇴근하는 고양이가 있다. 도서관 책을 많이 읽었으니 늘 으스대면서 그곳을 다니는 그놈은, 다른 고양이들로부터 부러움과 존경을 혼자서 모두 받는다.

또 그놈은 도서관 출입허가증 같은 것을 소지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그곳을 드나들고 있다. 왜냐하면 그만이 다니는 쥐구멍 같은 비상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금하던 차에 다른 고양이가 몰래 뒤를 따라 가보았다. 아니 이게 무엇이람? 책은 아예 보지도 않고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낮잠만 자고 돌아오지 않는가? 그것도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 쬐는 책 위를 골라 잠자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가에 꽂혀있는 책의 표지장정이 가죽, 아트(art)지, 판지 또는 결의 방향이 가로인지 세로인지 등, 표면처리나 두께에 따라 온도 차이를 정확히 감지해 내는 전문가 수준에 올라가 있는 것이다. 허망하게도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론을 지으면, 인생의 삶에서 우리 주위에는 이와 같은 경우가 너무나 많이 산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엉터리가 많고 위선적인 일이 많다는 것이다. 어느 분야든 그 분야의 진정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 올바른 마음가짐을 소지한 직능인, 이러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풍요로운 사회가 됐으면 한다.

<김원호 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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