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의 가치기준
연합의 가치기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7.15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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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라면 최근 지상으로 보도되는 유럽연합이 먼저 떠오르지만, 나름대로 역사에서 찾으라면 부보상(負褓商)을 꼽는다.

조선시대에 부보상은 그들만의 환난상구(患難相救·어려울 때 서로 도움)를 내세워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다. 온 산천을 누비며 등짐장수와 봇짐장수를 해야 하는 그들이기에 상단은 그들 구성원의 신용과 정직을 담보로해 그들의 권익을 철저히 지켜준다.

부보상은 직접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를 이어주는 물물교환경제를 매개한 상인으로서, 취급 물품에 따라 부상(負商)과 보상(褓商)으로 구분한다. 형태가 큰 물품의 종류에 속하는 나무그릇이나 토기 등과 같은 일상용품을 등짐을 지거나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판매한 등짐장수인 부상과 금이나 은, 동 제품 등과 같은 세공품(細工品), 선비들의 필묵 등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는 봇짐장수가 보상이다. 고려 제34대 공양왕(恭讓王 1345~1394) 시대에 등장하는 부보상은 당시 국가가 관리한 품목이었던 소금을 운반했다고도 한다.

상인의 덕목이 이익에 있음을 바탕에 두고, 온갖 단체, 연합 내지 연맹의 설립 목적에서 그 기준을 가늠해 보곤 한다. 대개 연합이 지녀야 할 가치기준의 아이콘은 구성원의 이익이다. 그 기준에 흔들림이 온다면 연합의 존재를 의심해 봐야 할 터이다.

임진전쟁 당시에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지낸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이 노량대전에서 순절하시지 않았다 또는 허균이 지은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인 조선 시대의 도적 무리의 우두머리 홍길동(洪吉童 1440~1510)이 일본의 오키나와로 갔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수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논쟁거리에서 사라지지 않음은 그나마 정의가 살아 있음을 저버리기 싫은 민심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최근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심심찮게 깍두기 형님들이 등장하여 그들의 정의에 입각하여 상대를 처단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가끔 그들의 정의가 왠지 밉지 않을 때가 있음은 왜일까? 거대한 세상과 사회에서, 각각의 힘없는 이의 목소리가 힘을 갖기 위함의 일환도 단체 내지 연합의 설립 목적 중 하나임은 어쩔 수 없다.

며칠전 문수산 자락에 다녀왔다. 범서읍 천상중학교 뒷길로 난 시멘트길을 따라 가서 큰골저수지에서 산으로 오르는 이정표를 보면 큰골폭포까지 1.3km라고 알려 준다. 물길을 오른쪽에 두고 계곡길을 올라가다보면 마치 문(門)처럼 자리 잡았다하여 이름 지어 준 문바위가 나오고 그 밑의 물길을 따라 올라 가면서 바위를 살펴보면 마치 공룡들이 춤을 춘 듯한 뒤엉킨 발자국화석이 나타난다. 다시 정상으로 오르는 길 중간 즈음에 고양이짐바바우가 서 있다. 마치 시루떡 두 조각을 세워둔 형상인데 규모는 높이 약 2m, 폭이 50cm, 넓이가 약 3m 정도인 퇴적암 덩어리이다.

문바위에 관련된 이야기로서, 옛날 왜구들이 문수산으로 침범해 오자 나랏님의 명령에 의해 성을 쌓기 시작했으며, 문수산의 산신령도 힘을 합하여 성터 입구에다 문처럼 생긴 바위를 만들어 왜구의 침입을 막았다고 한다. 그때 산신령이 산속의 짐승들에게 성을 쌓을 바위를 나르기를 명하였는데, 욕심 많고 잘 난 채를 잘하는 고양이가 보부상의 짐빵 보다 더 큰 바위를 지고 겨우 산성 부근에 이르렀는데, 이미 문수산성은 다 쌓은 후였다. 이리하여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큰 바위를 지고 늦게 도착한 고양이는 산신령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 나서 그 바위를 지금의 자리에 놓고 어디론가 사라졌으며, 그 바위를 가리켜 고양이짐바바위라고 전해온다.

동네에 흩어져 있는 흔적 하나하나가 그 향토의 역사이고 향토의 흔적은 같으면서도 다를 수 있다. 속한 군상의 입장과 처신에 따라 달리 보이거나 다르게 보고자하는 의지 때문이 아닐까. 향토사 내지 지역사는 같은 명제라고 하지만 유심히 들여 다 보면 다른 목소리와 다른 색깔이 스며들어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세심하게 안 본다면 온갖 인연에 묻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하여 어떤 이야기로 뽑아 내 보이는가를 가리켜 이른바 독창성(獨創性)이라 볼 수 있다.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의 한 예가 아닐까.

절집의 대웅전 벽화 중에 소의 코뚜레를 당겨가면서 물가에 데리고 가도 물을 먹고 안 먹고는 소의 의지임을 교훈으로 보여주고 있다. 구성원의 책무를 위임받았음을 잊은 연합이 짐바바위를 짊어진 고양이처럼 무리하게 스스로 잘난 채하면서 왕따의 길을 걷는 다거나, 구성원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하거나, 위임받은 권리를 남용한다거나 그 주어진 의무를 도외시한다면, 소가 물을 먹거나 말거나의 차원이 아니리라 여긴다. 연합의 운영 주체는 구성원이고 그들이 연합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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