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사관생도들의 임관
효(孝)사관생도들의 임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6.1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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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차림이 사람의 사고방식과 행동거지를 좌우한다는 인식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똑같은 남자라도 신사복 차려입었을 때와 예비군복 걸쳐 입었을 때의 그것은 ‘천양지차’로 비치기도 한다. 호칭 또한 예외가 아니다. ‘울산공고’라는 정식 이름보다 ‘중소기업 기술사관학교’란 별칭이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민족사관고등학교’란 이름도 그런 의도에서 붙여졌을 법하다. 자부심과 우월감이 은연중 돋보이는 교명이다.

실버세대를 겨냥한 사관학교가 부산에 이어 울산에서도 탄생했다. ‘울산 실버 효(孝)사관학교’란 이름의 ‘효(孝)지도사’ 양성 과정으로 무공수훈자회 울산지부(지부장 홍순권)가 그 운영주체다. 3개월 64시간의 교육과정(전문과정 32시간, 교양과정 32시간)을 충실하게 이수한 제1기 졸업생 130명이 지난 7일 배출됐다. 졸업 행사에서 간간이 구사된 용어들은 사관학교를 흉내 낸 것들이 적잖았다. 졸업생은 ‘사관생도’로, 졸업장은 ‘임관증’으로 불렸다.

졸업생과 하객들로 가득 찬 울산시 의사당 대회의실은 초등학교 입학식처럼 떠들썩했고 소풍날처럼 들떠있었다. 내·외빈, 가족친지보다 검은 사각모(학사모)와 검정 가운 차림의 사관생도들이 더 야단법석이었다. 임무웅(최우수상), 김희자(우등상)씨 등 17명이 수상의 기쁨을 누렸고, 반장을 지낸 이 모씨는 어린아이 같은 상 자랑으로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시상 직후 孝사관학교 홍순권 교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입교 선서를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입니다. 1기생 여러분은 자부심, 명예와 함께 막중한 책임, 의무감도 동시에 떠안게 됐습니다.” 교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각오로 정진해주기를 당부했다. 이어 ‘효 사관생도 신조’ 중 마지막 세 가지를 새삼 상기시켰다. “(나는 효 사관학교에서) 어른의 자존심과 긍지를 드높이는 계기, 이제껏 이루지 못한 꿈과 야망을 실현하는 계기, 지혜와 경륜을 갖춘 어른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만들어 내겠다.” 그는 세 가지 특별당부도 곁들였다.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하고 친절해야 합니다. 근검절약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시간을 아끼고 잘 관리하며, 특히 시간을 잘 지키는 선진시민이 돼야 합니다.”

孝사관학교 이금식 이사장도 격려의 말씀을 올렸다. “입교하실 때 하늘의 강자 솔개에 대해 말씀드린 바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짧은 기간이지만 솔개와 같은 고통의 시간을 잘 이겨내고 멋과 보람, 꿈과 희망에 찬 삶을 살 수 있는 계기 만들어내셨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도 생겼을 겁니다.” 그는 다시 ‘만(萬)시간 법칙’을 인용했다. “어떠한 목표든지 시간만 확실히 투자하면 누구라도 그 목표를 달성하여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루에 3시간씩, 10년 동안입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말아주십시오.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남미를 방문 중인 박맹우 시장을 대신해서 참석한 장만석 경제부시장, 그리고 박순환 시의회의장과 김복만 시교육감이 차례로 축사에 임했다. 박 의장과 김 교육감은 특히 원고없이 즉흥축사로 폭소와 박수를 이끌어냈다. 생도들의 환호에 기름을 부은 것은 재치와 덕담이었다.

의장이 장기인 ‘거품’까지 얹어가며 운을 뗐다. “효 사관학교는 120대 1의 경쟁률 뚫어야 들어가는 대한민국에서 입시경쟁이 가장 치열한 학교 아닙니까? …이성용, 송병길, 강대길 시의원이 같이 오셨는데 ‘효(孝)’ 하면 이성용 의원이 1등입니다. 왜냐? 이금식 이사장의 자제분이니까” 뒤질세라 교육감도 익살에 동참했다. “연세가 드셔도 학사모를 쓰면 젊어 보입니다. 20대 중반의 청년과 처녀들이 자리를 같이하셨으니 보기에 너무도 좋습니다.”

1기 졸업생 가운데는 ‘만 65세’가 안 된 생도도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KBS라디오 실버 프로그램 진행자 김중근(전 울산문예회관 예술단 사무국장), 성교육전문강사 최정미씨도 검은 가운을 함께 걸쳤다. “성교육 하다 보니 효(孝)교육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도전 동기에 대한 그녀의 귀띔이었다.

1기 졸업생들은 앞으로 교육청을 비롯한 유관기관의 협조를 얻어 유치원 어린이나 초·중·고 학생들에게 효를 가르친다. 올 하반기에는 제2기 교육과정도 마련된다. 2기부터는 ‘실버’란 표현과 ‘만 65세 이상’이란 규정을 없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교육청이 효지도사 300명을 주문했다는 소식을 보면 당분간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개연성을 시사한다. 실버세대들에게 도전 기회가 그만큼 더 주어진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아무쪼록 교육감의 말씀처럼, 효지도사들의 존재가 학교 폭력이나 청소년 비행으로 인한 사회적 시름을 말끔히 씻어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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