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섬’ 슬도
‘바람의 섬’ 슬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6.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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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 방어진의 무인등대가 있는 섬- 슬도(瑟島)는 더 이상 무인도가 아니었다. 지난 2일 오후, 슬도등대 앞 비좁은 언덕배기에서 섬이 생긴 이래 처음 전을 펼친 ‘슬도예술제’에는 지역 유지와 예술인과 시민 수백 명이 한데 어울렸다. 개막의 기쁨을 같이 나누기 위해서였다.

역사적 순간에 동참한 손님들을 맞은 것은 세찬 파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친 바람이었다. 이날의 주제어는 ‘큰 거문고(瑟)’. 하지만 그 소리는 바람(風)이 대신 내고 있었다. 작은 섬을 후려치는 바닷바람은 프로그램의 진행을 시샘하는 듯했다. 시종 텃세마저 부려가며…. 김종훈 동구청장의 ‘예술의 섬’ 선포를 시작으로 박명화의 시낭송, 박종해의 축사, 김천의 오카리나 연주, 김명제의 열창, 현숙희의 춤사위에 이르기까지.

‘곰보섬’ ‘시루섬’이란 딴이름에다 ‘섬끝(성끝)마을 앞바다의 작은 무인도’ ‘강태공(낚시꾼)들의 낙원’ ‘드라마 욕망의 불꽃 촬영지’란 이름이 딸린 슬도는 이날부터 새 명찰 몇을 훈장처럼 더 달았다. ‘예술의 섬’ ‘지붕 없는 예술관’에 이어 ‘바람의 섬’이란 별명도 하나 더.

슬도는 ‘바람(風)의 섬’이자 새 변신의 기대를 안은 ‘바람(念願)의 섬’이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방파제 언저리, 반구대암각화의 ‘새끼 업은 고래’를 입체적으로 되살려놓은 키 높은 조각 작품의 이름은 용케도 ‘바다를 향한 염원’이었다. 괄목상대! 슬도는 실제로 작년 이맘때쯤 다리(‘슬도교’)가 놓인 뒤부터 놀라운 변신을 거듭하고 있었다.

변한 것은 사진동아리 ‘아담’ 회원들의 등대 사진들이 따개비처럼 붙은 슬도등대(1950년대 말 건립)의 외양만이 아니었다. 방파제에 둘러싸인 채 대책 없이 썩어가던 방어진 내항(內港) 수질의 발 빠른 정화는 변화의 상징 그 자체였다.

얼마 전 슬도를 다녀간 한 여류 아마추어 사진작가는 사진과 설명을 인터넷에 이렇게 올렸다. “바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깨끗한 물, 여기저기 강태공의 한가한 모습들이 정겹게 느껴졌어요.” 그녀는 ‘녹조류’에도 눈길을 보냈다. 사실이지 섬끝마을 바닷물에는 한동안 보기 드물었던 ‘몰’이 뱃전에 채일 정도로 가득 자라고 있었다. ‘잘피’(seagrass, 해조류의 일종) 개체 수의 증가 또한 감탄사를 자아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몇해 전 울산시가 ‘생태계 복원의 잣대식물’이라며 의욕적으로 옮겨 심었던 해초(海草)가 바로 잘피였다.

관계자들의 귀띔들은 하나로 가닥을 잡았다. 물이 깨끗해진 것은, 슬도교를 신축할 때 물길을 막고있던 방파제의 한 모퉁이를 과감히 허물고 새롭게 물꼬를 튼 덕분이었다는 것. 신이 난 이는 김종훈 청장이었다. ‘연육(連陸) 방파제’의 일부를 추가로 허물어 물길 하나를 더 낸다면 수질 개선은 보나마나가 아니겠는가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사진작가 권 일이 예술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은 이날 예술제에는 동구 출신 지방의원들도 다수 얼굴을 내밀었다. 장만복 의장과 박문옥 부의장을 비롯한 동구의회 의원, 그리고 울산시의회 권명호 산업건설위원장과 강대길 의원이 그들이었다. 특히 ‘슬도 공원화 사업’에 대한 권 위원장의 관심과 구상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방파제나 선착장 축대를 일자형이 아닌 계단식으로 꾸민다면 훌륭한 휴식공간을 겸할 수 있을 겁니다.” 그의 평소 지론이었고, 슬도의 연육 방파제 축대는 어설프나마 그의 지론을 흉내 내고 있었다. 다만 그 너머 밋밋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큰방파제(세광중공업 쪽)의 일자형 축대는 아쉬움으로 남는 모양이었다.

방어진 토박이인 그는 섬 이름 해석에도 견해를 달리했다. 슬도 방파제 초입 부분, 바위에 새긴 ‘방어진 슬도’ 설명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방어진 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바위섬으로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하여 슬도(瑟島)라 불린다.…>

“섬 이름은 보통 그 형상에 따라 짓는 경향이 있지요. 우리 어릴 때는 시루를 뒤집어 놓은 모양이라 해서 ‘시루섬’이라 부른 적은 있지만, 글쎄, ‘거문고 소리’ 해석은 근자의 일 아닐까요?”

‘큰 거문고(혹은 비파) 슬(瑟)자’와 연결 지은 해석은 시적(詩的) 상상력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여하간 슬도는 스토리텔링의 보물섬 같아서 더 한층 매력적이다. ‘시사랑울산사랑회’를 이끌고 있는 시인 문 영은 슬도를 이렇게 읊었다. ‘슬도의 노래’ 란 제목으로.

“시간은 삶의 옷을 바꾸지만/ 슬도는 섬일 뿐 변하지 않는다/ 단지 땅을 보듬고 바다를 출렁이게 할 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줄 뿐/ 슬도는 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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