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믿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5.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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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친척이니까 믿고서 상당한 액수의 돈을 빌려주었다. 차용증서를 써주겠다고 했을 때 친척끼리 그럴 수 있느냐고 사양을 했는데 굳이 쓰겠다고 하여 못 이기는 척 받아 두었던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약속한 날짜를 한 참 지나도 갚지 않아 결국은 민사소송, 차용증서를 받아서 천만다행(?)으로 재판을 받고 법정에서 다시 약속을 받았다. 또 믿고서 한 참을 기다렸는데 빚은 갚지 않고 새 차를 사고, 외식하고, 해외여행 다니면서 다른 친척들한테 자기네를 법정에 세웠다고 험담하였다. 사람을 잘 못 믿은 그 사람은 화(火)병이 났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은 왜 도끼를 믿었고, 어떻게 되어 발등을 찍히게 되었는지 잘 새겨야 그 뜻을 이해하게 된다. 무릎 높이의 반 팔 정도의 통나무 위에 작은 나무들을 놓고 장작을 패다가 잠시 쉬려고 통나무 위에 도끼를 놓고 그 옆을 지나가다 자기 발로 도끼의 손잡이를 건드려 도끼가 통나무에서 떨어지고 그 바람에 도끼가 발등으로 떨어진 경우를 말한다. 도끼가 통나무에서 떨어지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느냐는 믿음이 한 번에 무너지는 경우이다. 후배라고 잘 보살펴주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경우이다. 또 선거철에 자주 나오는 말이다. 낙선한 사람 왈, ‘믿는 도끼? 유권자를 믿느니, 거시기를 믿어야 했어!’ 이웃에 사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더니 이자까지 붙여 꼬박꼬박 갚았다. 여러 번을 그랬다. 이렇게 되어 그 친구를 믿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이 앞으로도 저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면 돌려받을 수 있겠다는 예측이 쌓였다. 이 예측은 과거를 따져본 결과이다.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그 친구를 믿는다는 영어의 trust가 여기에 해당 된다. trust에는 in이 들어가지 않는다. 밖에서 객관적으로 그 능력을 믿는 것이다. 오늘(음력 4월 8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을 믿는 사람,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기독교의 성탄절처럼 이 날을 믿고서 봉축(奉祝)한다. 이런 종교적 차원의 ‘믿음’은 절대성을 요구하고, 전제(前提)로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냥 ‘느낌’이 생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장 높은 느낌으로서의 믿음이다. 이런 전제는 신화(神話)를 읽거나 들을 때, 그 신화가 생성될 때의 느낌으로 믿어져야 하는 것과 같이 따져서는 안 되는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기하학(幾何學)에서의 한 점(點)은 직선을 만들기 위해, 정의하지 않고 그냥 쓰지만(公理), 점은 직선이 있어야 점이 될 수 있듯이 종교에서의 믿음은 점과 같은 공리(公理)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 믿음을 굳이 영어로 표현한다면 belief이다. belief in, 어떤 것 안에 들어가 있으면서 그것을 믿어버리는, 밖에서는 관찰할 수 없는 상태의 느낌으로서의 믿음이다. 그래서 종교의 믿음은 무너져도 화(火)병이 생기지 않는다. 지극정성으로 백일기도 했는데 자녀가 입학시험에 떨어졌다고 화병 나는 사람은 없다.

법어(法語)는 스님이 부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말이다. 소와 닭들이 걱정되는 요즈음 성철(性徹)스님의 법어(1986)가 가슴으로 느껴진다.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술집에서 웃음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교회에서 경건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일이니 축하합니다. /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필자 합장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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