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破戒)
파계(破戒)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5.2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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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숨을 살리려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나라에서 보화를 얻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나를 따르라.”

마태복음 16장과 19장 구절을 등장시키면서 시작되는 영화는 지고청순의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파계’(감독 프레드 진네만, 1959년 作)다. 본디 타이틀은 The Nun’s Story(수녀 이야기)’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파계(破戒)’란 이름표를 달고 나왔다. 가브리엘 수녀(오드리 헵번 役)가 성당 바닥에 열십자로 드러누워 간구하던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파계(破戒)’란 본디 ‘계율을 깨뜨리는 행위’를 뜻하는 불교용어다. ‘파계승(破戒僧)’은 이 용어에서 가지를 친 파생어다. 그런데 파계란 낱말이 요즘 임자 만난 듯 세인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린다. 명망 있는 승려 8명이 벌였다는 ‘밤샘 도박’ 파문 때문이다.

몰래카메라에 잡힌 도박판의 실상을 전해들은 사부대중들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보도에 따르면, 어느 주지스님의 다비(茶毘)행사에 앞서 자리를 같이한 그들은 불자들의 시줏돈을 노름밑천으로 삼았다. 담배에다 술까지 입에 댔다. 여자 이야기만 빠졌을 뿐 필부필부, ‘시정잡배’나 다를 바 없었다는 반응에 ‘고기 맛을 본 중’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뒤따랐다.

급기야 참회와 쇄신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곳은 승가(僧家) 내부였다. ‘부처님오신날 목 놓아 통곡하며’라는 성명서를 낸 이는 대한불교조계종 수좌스님 10명이었다. 조계종 지도부를 겨냥한 이 성명은 총무원장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면서 개탄의 메시지를 동시에 담았다. 도박, 술집, 성매매, 폭로, 조폭 등 세속에서조차 언급하기 난감한 말이 조계종의 핵심부를 향한 사회적 비난에 동원되고 있다.”

영화 ‘파계’에 나오는 성경구절, 특히 마태복음 19장의 구절을 새삼 떠올릴 필요를 느낀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일시나마 도박에 탐닉했던 파계승들에게 대입시켜도 괜찮을 구절은 아닐까. “오드리 헵번의 삶을 예시해주는 것 같았다”는 영화 ‘파계’의 줄거리를 재구성해 볼 필요도 느낀다. 여주인공 가브리엘 수녀가 계율을 못 지킨 것은 세속적 갈지자 걸음을 보인 일부 불승들의 ‘파계’와는 격을 한참 달리하기 때문이다.

“저명한 벨기에 의사를 아버지로 둔 덕분에 부유한 환경 속에서 의학공부를 즐길 수 있었던 그녀는 연인과의 결혼이 깨지면서 평소 흠모했던 수녀의 길로 들어선다. 규율과 순종, 이 두 가지는 끊임없이 그녀를 흔들리게 한다. 그녀는 고뇌 끝에 벨기에령 콩고로 날아가 간호하는 일에 전념한다. 환자들과 대화하고 간호하느라 저녁미사, 기도 시간에 늦기 일쑤고 밤부터 아침까지 이어지는 ‘대침묵시간’에도 환자가 필요로 하면 그들과 대화한다. 규율보다는 환자나 동료수녀와 나누는 대화가 더 즐겁고 무조건적인 순종보다는 인간적 소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발발과 아버지의 부음 소식은 흔들리던 그녀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만다. 그녀는 마침내 종신서원(終身誓願)을 파기하고 수녀원을 나선다.”

보통사람들은 성직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호칭할 때 ‘-님’자를 넣는다. 목사님, 신부님, 스님… 하는 식이다. 하지만 언론보도에서는 조금 다르다. 목사와 신부는 ‘-님’자가 대개 빠지지만 ‘스님’은 그대로다. 이는 <승(僧)+님>에서 이응(ㅇ) 탈락과 함께 <스님>으로 변한 낱말이 이미 ‘존칭형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부처님 오신 날’이 법정공휴일로 지정된 것처럼 불교계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었을까. ‘중’이나 ‘승려’라는 호칭을 애써 고집하는 기독교 보수교단은 예외일 수 있지만, 불교 성직자들에 거는 사부대중들의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징표일 것이다.

조운찬 경향신문 문화부장은 부처님오신날(5월 28일) 칼럼에서 ‘문제는 계율’이라고 강조했다. “승려가 지켜야 하는 계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미(沙彌)라고 불리는 초보 승려가 되려면 10계(十戒)만 준수하면 되지만 온전한 승려가 되려면 구족계(具足戒)라 불리는 수백 가지의 계율을 지켜야 한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경우 비구승이 지켜야 할 계율은 250가지, 비구승은 348가지나 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부처님 당시에도 ‘파계’ 시비가 있었다. 부처님은 그때마다 새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기존 계율을 지킬 것을 강조했다.… 문제는 계율이다. 부처님 당시에 제정한 ‘사미십계’만 지켜도 청정(淸淨) 승가를 이루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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