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시나리오
가상 시나리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4.3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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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역사는 “만약에…”라는 가정법이 통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지나간 버스 손 흔들기’나 다름없다. 그러나 정류장으로 다가오는 버스는 다르다. 그 가능성이 얼마든지 열려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버스’ 즉 미래의 역사는 가정법을 허용한다. 역사학이란, 어찌 보면 과거의 역사를 반추하고 이를 거울삼아 바람직한 미래의 역사, 그 청사진을 제시하는 학문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머지않아 보따리를 풀어놓을 지방정치의 한 단면을 가상 시나리오로 꾸며 보는 것은 조금은 유의미한 작업이 될 수 있을 법도 하다.

약 두 달 후인 7월 8일은 제5대 울산광역시의회가 총 회기 4년의 또 다른 절반을 시작하는 날이자 제5대 ‘후반기 의회’가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날이다. 마라톤으로 치면 반환점을 도는 시점이다.

한데, 그 전에 치러야 할 통과의례가 하나 있다. 바로 원(院) 구성을 위한 ‘인적 물갈이’다. 의장(1명)과 부의장(2명), 그리고 상임위원장(5명)을 어떠한 인물로 채울지, 그 작업을 개원(開院) 전까지 마쳐야 한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넣는 작업은 이번 원 구성 때부터 새 교범을 따라야 한다. 지난해 개정된 ‘울산광역시의회 회의규칙’과 ‘울산광역시의회 위원회 조례’가 그것이다.

‘교황 선출 방식’에서 벗어나 후보 등록과 정견 발표의 길을 트게 된 것은 소수 야당의 ‘투쟁’의 결실이자 다수 여당의 ‘아량’의 산물이라는 뒷말이 있다. 이는 ‘밀실정치’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잘만 한다면 ‘소통정치’의 개화를 기대할 수도 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울산광역시의회 회의규칙 제8조(의장·부의장 선출) ①항은 “의장과 부의장은 의회에서 무기명투표로 선거하되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득표로 당선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은 개정 전이나 다름없다. 반면 ⑤항과 ⑥항이 새로워졌다. ‘후보 등록’과 ‘정견 발표’ 규정을 새로 못 박은 것이다.

⑤항은 “의장 또는 부의장이 되고자 하는 의원은 해당 선거일 2일 전 18:00(오후 6시)까지 별지 서식에 따라 의회사무처에 서면으로 등록해야 하며…” ⑥항은 “후보자 등록을 한 의원은 선거 당일 본회의장에서 5분 이내에 정견을 발표할 수 있으며…”라고 돼 있다.

2년 전 제5대 ‘전반기 의회’가 출범할 당시 전국의 눈총을 받았던 ‘몸싸움 의회’를 생각하면 실로 격세지감이 있다. 상임위원장도 의장단처럼 본회의에서 선출하게 된 것도 예사롭지 않은 변화다. 울산광역시의회 위원회 조례 제6조(상임위원장) ②항은 “상임위원장은 의원 중에서 의장선거의 예에 준해 본회의에서 선거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만하면 밀실야합의 구태를 훌훌 벗어버릴 수 있는 제도적 틀은 충분히 갖춰졌다는 게 의회 안팎의 중론이다. 이제야 참된 풀뿌리민주주의의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됐다는 안도의 한숨도 나온다. 그런 기대감에서 쓰는 ‘의장단 선출 가상 시나리오’는 무척 희망적일 것이다.

7월 초, 제5대 후반기 의회 개원을 앞두고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는 제1차 정례회가 열리는 울산광역시의회 의사당 4층 본회의장. 취재진과 방청객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7월 7일까지가 임기인 박순환 의장이 의사봉을 두들긴다. 전반기에 환경복지위원회에서 전우애를 다진 새누리당 소속 소장파 의원이 여당 몫 서동욱 부의장을 의장으로 추대한다.

동의(同意) 박수가 쏟아지자 긴급 신상발언을 요청한 서 부의장이 특유의 중저음(中低音) 톤으로 박수를 잠재운다. “여러분의 뜻 정말 감사합니다만, 연세나 연륜이 저보다 더 나은 분들도 계시고 한데…. 표결 결과를 겸허히 기다릴 뿐입니다.”

연이어 박순환 의장과 새누리당 연장자 허 령 의원(행정자치위원장)에 대한 추천이 이어진다. 4·11 총선 기간에 복당한 새누리당 박영철 의원에 대한 추천은 의외라는 반응을 낳고, 그 겨를에 진보당 몫 이재현 부의장에 대한 추천도 고개를 든다.

미리 짜 놓은 듯한 각본은 그러나 의도된 각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출 방식에 새 옷을 갈아입힌 제도적 장치가 낳은 의회민주주의의 새로운 싹, 희망의 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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