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과 오만
자만과 오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4.23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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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총선이 끝난 얼마 후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 K씨가 선거 결과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선거 말이죠. 고스톱으로 치면 상대방이 ‘설사’한 패를 쥐고 있다가 싹쓸이까지 하고 피 2장씩 더 받은 거나 다름없었지요. 정말 통쾌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4·11총선은 새누리당에 북구 국회의원 자리를 되찾고 동구 제3선거구까지 어부지리로 챙기는 행운을 안겨다주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K씨는 이어 이런 꼬리도 달았다. “김창현 후보하고 김용민 후보는 정말이지 우리의 선대본부장 역할을 톡톡히 해준 분들입니다. 그러니, 감사패라도 드려야 할 판입니다.”

그의 말 속에는 뼈가 있어 보였다. 야당 후보들의 자만(自慢·自滿) 또는 오만(傲慢)이 스스로 패착을 불러왔을 거라는 분석이다.

민중서림에서 펴낸 전면개정 제5판 ‘엣센스 국어사전’에는 이 낱말들을 뭐라고 풀이할까. 뒤져 보았더니 ‘自慢’은 “스스로 뽐내며 자랑하여 거만하게 굶.”이고 ‘自滿’은 “스스로 거드름을 부리며 만족해 함.”이다. 또 ‘傲慢’은 “잘난 체하여 방자함.”이다. 얼핏 세 낱말 모두 뜻풀이가 비슷한 것 같지만 체감 정서로는 ‘傲慢’이 한 수 더 위다.

결론적으로 시의원 K씨의 분석은 울산 북구의 김창현 후보와 ‘국민 욕쟁이’ 김용민 후보는 자만의 도를 넘어 오만 때문에 패했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야권단일화 경선에서 패했지만, 국회의원 출마의 뜻을 품은 이상범 후보가 민주통합당 간판을 달고 나왔을 때부터 일은 꼬이기 시작했다는 게 정치분석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통합진보당은 당시 머뭇거릴 겨를도 없이 대변인도 아닌 ‘울산시당 사무처장’ 이름으로 이 후보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시도했다. ‘인신모독에 준하는 공격’이었다는 뒷말도 있었다. “어차피 경선을 통한 단일화를 생각한다면 극진하게 예우해도 모자랄 판에 예봉부터 꺾어놓고 보자는 전략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들이 지배적이었다. ‘그릇의 크기’를 논하는 평자도 있었다. 그 이면에는 자만과 오만이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총선 직후. 울산의 패자는 더 낮은 곳으로 임하겠노라, 그리고 다시 일어서겠노라 굳게 다짐했다. 중국식 ‘하방(下放)’을 그도 염두에 둔 것이었을까.

‘낮은 자세’니 ‘오만’이니 하는 용어는 승자인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단의 입에서도 나왔다. 23일 오전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가진 새누리당 시의원들은 현수막에다 “더 낮은 자세로 시민만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는 표현을 구사했다. 기자회견문에는 또 이런 표현도 사용했다. “이번 총선 결과에 안주하여 교만하거나 오만하지 않을 것을 거듭 다짐하면서…”

하지만 웃음 머금은 그들의 말씀과 행동은 오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만에 준하는 메시지가 넘쳐나는 것으로 비쳐진다는 평이 뒤따랐다. 그들의 말씀이 정녕 거짓이 아니라면 가깝게는 4월 임시회(145회)에서, 조금 멀게는 오는 6월의 후반기 원(院) 구성에서 말씀의 진정성을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라는 주문도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새누리당 시의원단을 대표하는 김종무 의회운영위원장의 각별한 다짐을 담은 녹음테이프를 되풀어 볼 필요가 있지 싶다. 김 위원장은 이날 “우리 새누리당 의원단, 후반기에는 어떠한 자세로 임하는지 잘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이렇게 약속했다.

“후반기에는 전반기와는 달리 여야가 소통이 잘 되리라고 봅니다. 우리 새누리당이 다수당이라고 해서 힘에 의존해서 통합진보당을 무시하는 일은 아예 없을 겁니다. 여야가 소통이 잘 되는 가운데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집행부도 적절히 견제하면서 시민의 진정한 대의기구로 거듭날 것입니다.”

4년마다 다시 찾아오는 총선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면 자만이나 오만부터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선거가 주는 뼈저린 교훈이다. 그 교훈을 곱씹어야 할 주체는 누구인가. 여야 모두에 해당되는 교훈이지만, 특히 귀담아들어야 할 쪽은 야당, 그 중에서도 통합진보당일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지난 19일 경향신문과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한국정치연구소가 마련한 ‘19대 총선과 정당정치, 그리고 한국의 민주주의’ 공동 학술대회에서 김용복 경남대 교수가 내뱉은 다음의 쓴소리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진보정치 1번지인 울산 북구에서 일대일 대결이었음에도 통합진보당이 진 이유에 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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