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야성의 상실과 정치밭의 개량
울산 야성의 상실과 정치밭의 개량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4.15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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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울산 총선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야성의 상실과 함께 울산에 전입한 신정주인들의 뿌리내림이다. 대표적 현상은 낙마한 야권의 송철호·김창현 후보군과 신정주인에 속하는 이채익·안효대 당선자로 대비된다.

이제 울산은 모두 여권 국회의원만 존재하는 도시가 됐다.

이 구도가 나쁘다고만 할수 없지만, 일방성과 편향성은 우려할수 있다. 예컨대 입법을 요구하거나 청원할 때 이제 여권에게만 의존하게 된 것이다. 1948년 헌정 이후 19번 치른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권이 석권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돌아보면 울산은 본래 야성이 센 도시였다.

그 뿌리는 예로부터 변방을 지키는 관방지역 특유의 결기와 근대들어 해양을 통해 외래문화를 빨리 접촉함으로써 생겨난 계몽주의 사조가 퍼졌던 것에서 찾아진다.

먼저 울산에는 육군의 야전사령부였던 병영이 있었고, 해군의 사령부였던 개운포 수영이 있었다. 울산 주류를 이뤘던 그들은 변방요새에 있으면서 우국충절의 기개가 높았다고 볼수 있다. 조정이 권력다툼 하거나 국정을 농단하는 소식을 들으면 변방의 장병과 식솔들의 비분강개는 누구보다 컸을 것이다.

그런 한편 해양문화권인 울산은 근대들어 바다를 통해 다른 어느 곳 보다 빨리 해외문화를 받아들였다. 지역의 선각들은 일본 유학을 통해 계몽주의 사조를 일찍이 울산에 퍼뜨렸다. 해방전후 시기에는 일각에서 사회주의에 기울어져 반체제적 성향까지 띠었으나 상당수는 야학이나 재건학교 형태로 주민의 비판 및 계몽 의식을 키웠다고 본다.

울산은 그런 비판적 정신을 이어오면서 지역정치 판도를 여권에 모두 넘기지 않도록 한 것으로 볼수 있다.

그런데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권인 새누리당이 몽땅 의석을 차지하는 이변이 생겼다. 울주군 한 석 빼고는 모두 경합할 것이란 당초 예상을 엎어버린 것이다. 민심이 어떻게 변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짚히는 것이 관방지역 본래적 기질과 근대 이후 배태된 비판정신이 무뎌진 점이다. 이젠 19세기를 경험한 사람이 거의 없다. 100세를 넘긴 유권자가 극히 드물고 그 정신에 영향 받은 식솔도 줄었다. 따라서 변방 특유의 비분강개나 계몽주의 정신이 희박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여기에 팔도사람이 모여 신정주권을 형성하면서 오롯한 울산정신이랄 것도 없이 융화된 것도 한 원인으로 간추려진다.

이런 가운데 정통야당 정신을 계승한 남구갑의 심규명 후보, 그리고 노동계를 중심으로 한 진보야당의 김창현·김진석·이은주 후보가 고배를 들었다. 거기에 정통야당과 진보야당의 중간쯤인 송철호 후보의 패배가 이어졌다.

이들의 패배 요인으로 울산 지역적 사조변화를 읽고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을 들고싶다.

단일후보를 뽑는데 진을 빼고 전략조차 허둥지둥한 느낌이 짙다. 비분강개할 마음이 무뎌진 유권자에게 정권심판론도 큰 힘을 얻지 못했다.

울산의 야권은 이제 울산본연의 야성에 기대기보다 새로운 비전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다음으로 눈길 가는 것은 울산 토박이가 아니면 선출직을 얻기 어렵다는 관점을 바꾼 점이다. 남구갑 새누리당 이채익 당선자는 울산이 안태고향이 아니다. 이 당선자는 남구청장 선거때나 지난 18대 낙선한 총선때도 고향이 양산이란 점이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출신지를 따져 일정 비토그룹이 있었던 것이다. 또 재선에 성공한 동구 안효대 당선자 역시 비슷한 경우에 속한다. 그들의 당선은 팔도사람 구성비가 달라져 가고 있는 울산의 정주권 변화가 반영됐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울산정치 1번지라는 중구는 송철호란 인물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여전히 비토그룹이 있다는 일면을 보여줬다. 그는 매우 잠재력이 큰 야권 인물이지만 중요 선거때마다 패인으로 분석된 것이 호남인이란 이유였다. 이번 선거때는 자신의 모교인 부산고등학교 배지를 단 교모와 교복을 입고 출전했지만 큰 덕을 본 것 같지 않다. 그는 영호남 경계를 허물수 있는 융합형 인물이고, 야권 핵심인물과 울산을 이어줄수 있다. 한 원로 정치인은 “전라도에서 왕따요 경상도에서도 왕따인 그를 이제 울산이 받아들일수 있는 것 아닌가”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아직 뭔가 부족했다는 느낌을 준다.

울산 정치밭은 변방의 비분강개(悲憤慷慨)에서 신정주권의 확립과 함께 원융회통(圓融會通)으로 바뀌는 과정으로 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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