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쓰기’는 문명의 여명을 밝힌 위대한 변혁
‘손쓰기’는 문명의 여명을 밝힌 위대한 변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4.15 2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막대·돌 쥐면서 먹이사슬 최상위로 뛰어올라
도구고안·조형물 다듬기 디자인 시대로 진화
문명이란, 인류가 이룩해 온 탈 자연 및 반 자연의 과정을 일컫는 말임을 앞에서 논한바 있다. 그러니까 문명은 자연을 구성하는 무수한 인자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였던 인간이 그것으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생존 방식을 모색해 온 과정인 셈이다. 이 말이 어원적으로 시민(Civis) 및 도시(Civitas)라는 말들과 잇닿아 있음을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를 통해서 볼 때, 문명화 전(前) 단계의 인간은 야생의 들에서 채집한 각종 식물이나 그 열매 그리고 원시적인 사냥으로 포획한 동물 등을 먹을거리로 삼았고 또 동굴이나 바위그늘 등을 주거지로 삼았으며, 다른 동물들과 먹이 다툼을 벌였던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고 추측된다.

그는 그와 같은 공간에서 서식하는 다른 동물들처럼 빠르게 달릴 수도 없었고, 적을 공격할 수 있는 튼튼한 뿔이나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마치 말의 뒷발차기와 같은 위력적인 공격력도 지니지 못하였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특별히 뛰어난 시각이나 청각 그리고 후각 따위를 지닌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동물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크고 우람한 몸집과 그에 걸맞은 힘을 지닌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설치류나 여우처럼 굴을 잘 파서 위기를 모면하는 능력도 없었고, 원숭이들처럼 나무를 잘 오르지도 못하였으며, 새처럼 날 수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물개나 고래 그리고 물고기처럼 헤엄도 잘 치는 것도 또한 아니었다. 주어진 신체적 경쟁력으로 치자면, 어느 것 하나 당당히 내세울 것이 없는 가장 열등한 존재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먹을거리는 육식동물은 물론이고 초식동물과도 겹쳐 있었다. 식물의 잎이나 뿌리 그리고 그 열매 등은 초식동물 및 유인원들의 먹을거리와 겹치고, 동물의 살코기는 맹수류의 그것과 겹치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에 따라서 인간은 먹을거리를 두고 육식동물뿐만 아니라 초식동물과도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태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태생적으로 열등한 신체 조건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의 경쟁자들과 대등한 영향섭취를 하기는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에 따라서 그는 매일매일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야 하는 고달프고 또 불안정한 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가 사냥하고자 하는 초식동물처럼 빠르게 달릴 수 없었으며, 그가 애써 구한 한 덩어리의 살코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맹수들과 맞붙어 싸울 수 있는 힘도 갖지 못했다. 이렇듯, 먹이사슬 중 최하위층에 속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은 그에게 주어진 불만족스러운 외적 조건을 극복하고 또 생을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하여 경쟁 관계에 있는 동물들과 끊임없는 갈등과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와 같은 그의 끝없는 좌절과 절망은 그를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계기와 조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힘과 빠르기 등에서 절대적으로 열등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과는 다르게 사는 방법을 강구하는 일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동물처럼 열매를 따 먹거나 뿌리식물을 캐어 먹는 일 그리고 맹수들이 먹다가 버린 동물의 사체(死體) 따위가 전부였을 것이다. 쫓기고 도망 다니며, 되풀이 되는 허기와 추위를 견디며 살던 그가 어느 날 그동안의 관계를 역전시킨 것은 놀랍고도 운명적이며 또 획기적이기도 한 사건, 즉 위대한 손의 재발견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나무막대나 돌맹이 등의 물건을 마음대로 움켜쥐고 또 그것을 의도한 대로 쓸 수 있는 기능이 손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던 나무막대와 제멋대로 나뒹굴던 돌맹이를 그가 그의 손으로 집는 순간, 그는 보잘 것 없고 또 볼품이 없었던 과거 그로부터 탈피하여 두렵고 맞서기 어려운 존재로 바뀐 것이다.

그동안 그와 같은 공간에서 물과 먹을거리를 두고 쟁탈전을 벌였고 또 그에게 참혹한 패배와 고통을 안겨주었던 원숭이들이나 굽 동물들 그리고 심지어는 맹수들까지도 그가 든 막대와 돌맹이의 위력을 무서워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막대와 돌맹이를 손으로 쥔 순간, 비로소 그는 먹이 사슬의 최하위층에서 벗어나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의 손을 주목하기 시작하였으며, 그가 든 막대와 돌맹이를 새롭게 지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가장 보잘 것 없다고 여겼던 위대한 손의 효용성을 자각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제까지 한 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무수한 나무막대와 돌맹이들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재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때까지 모르고 있었던 그의 손은 단지 물건을 잡거나 쥐는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코로 숨 쉬고 또 냄새 맡는 일 그리고 입으로 말하고 또 맛보거나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손으로 감지할 수 있는 촉각이었다. 손으로써 특정 물건의 크기와 그것의 뜨겁거나 차가운 성질, 거칠거나 부드러운 재질감, 또한 그것의 가볍고 무거움의 정도 그리고 생긴 모양 등을 낱낱이 살피고 또 구분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손은 눈과 귀, 코 그리고 입처럼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신체 기관이었다.

이렇듯 손은 촉각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물건을 잡거나 쥐고 또 그것을 그의 의지대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그런 그의 손으로 갖가지 물건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된 순간, 그는 비로소 과거의 자연이 지배하는 시대와는 단절될 수 있었으며, 그로부터 문명의 시대가 도래 하게 된 것이다. 그는 보다 적극적으로 손의 활용법에 대해서 그리고 나무막대나 돌맹이가 갖고 있던 원래의 형질을 보다 쓰기 좋게 바꾸기 위한 고민을 하였다. 그리하여 점차 인공이 가미된 도구가 고안되고 또 그에 의해 다듬어진 조형물들이 하나씩 축적되기 시작하였다. 전 시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디자인의 시대가 막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가 들었던 막대와 돌맹이는 한편으로는 무기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도구를 생산해 내는 원자재이기도 하였다.

손으로 물건을 쥘 수 있다는 사실과 쥐어진 물건으로 다른 무리의 동물들을 공격할 수도 있고 또 딱딱한 열매의 껍질을 깨뜨리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들고 있는 물건을 쪼개거나 깨트리고 또 다듬어서 제3의 모양으로 그 형질을 바꿀 수 있다는 등의 사실을 자각한 순간, 그의 앞에는 이전의 그것과 달리 무한한 가능성의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그는 이제 도망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그동안 그를 괴롭히던 동물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사건, 즉 손의 사용은 곧 그때까지 유지되어 온 자연의 질서와 생태계의 위계 등을 송두리째 교란시킨 일대 변혁이 아닐 수 없다. 자연계의 어떤 동물들도 사람처럼 손으로 다양한 모양의 물건들을 마음대로 들거나 쥘 수 없다. 그래서 손은 사람을 동물과 구분 짓는 신체기관인 것이다. 이렇듯 손으로써 스스로를 동물과 구분한 그들을 연구자들은‘손쓴 사람(homo habilis)’라고 불렀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