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사고’ 처벌로 끝낼 일 아니다
‘고리원전 사고’ 처벌로 끝낼 일 아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3.15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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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 발생한 고리원전 ‘완전 정전(블랙아웃)’사고는 거의 괴담 수준이다. 부산시의회 김수근 의원이 고리원전과 가까운 한 식당에서 일단의 직원들이 “원전 전원이 차단됐는데 비상발전기가 안돌았단다. 괜찮을까”하는 말을 듣고 사실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사건전모가 밝혀졌으니 ‘괴담’이라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어제, 오늘 그 괴담내용이 더욱 기괴해지고 있다. 사건이 처음 언론에 보도됐을 때까지만 해도 고리원전 측은 “정전사태가 12분 만에 해결돼 비상발전기를 가동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란 반응이었다. 하지만 14일 제1발전소 소장과 기술실장, 발전팀장 등 간부들이 사고현장에서 대책을 논의한 뒤 정전사고를 보고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고리원전에 상주하고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관 1명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나온 직원 3명도 한 달 동안 이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괴담 내용이 더 희한한 것은 사고를 은폐하려고 했던 제1발전소 소장이 지난 6일 승진해 본사 위기관리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사실이다. 주재관들의 사고인지(認知)도 괴이하다. 사고 당일은 일찍 퇴근했기 때문에 내용을 잘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전 안에 어디든지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주재관들이 한 달 이상 이상한 낌새를 채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원전은 국가보안 시설이기 때문에 공구 하나도 놓는 위치가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부품 하나도 밖으로 반출·반입할 경우 정문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그 내용은 일일이 최고위급 간부에게까지 보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곳에서 ‘완전 정전’사고가 한 달 이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면 수십, 수백 명이 조직적으로 이를 은폐한 것으로 봐야 한다. 아니면 이런 사고정도는 몸에 익숙해져 아예 ‘보고 깜’으로 취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제 한수원은 최고 경영자부터 현장관리자 그리고 담당직원까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원전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기술적인 문제에 앞서 구조적 개혁·개선이 없으면 이런 사고는 앞으로도 수없이 반복될게 틀림없다. 해결방법은 원전이 지금까지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운용감시기구를 새로 편성해 한수원 직원 외에 외부 전문가, 지자체대표, 지역 주민대표를 참여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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