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비정규직지원센터에 대한 바람
동구 비정규직지원센터에 대한 바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3.05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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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달 전, 어느 휴일 아침에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같은 75년생 동갑내기 친구 부부 중 여자 친구의 전화였다. 오랜만에 온 전화여서 반갑게 받았더니, 첫 마디가 “대학병원에 아는 사람 있나?”였다. 혹 친정이나 시댁에 누가 편찮으신가 해서 “왜?”라고 가볍게 던진 내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남편이 어제 회식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있는데, 급하게 수술해야 해서 옮겨야 되는데…” 아니, 나이 서른일곱에 그것도 직원들과 회식하는 자리에서 뇌출혈이라니. 어찌어찌해서 친구의 남편은 수술을 받았고 한동안 중환자실에 있다가, 3개월가량 입원한 뒤 지난주 부산의 모 병원으로 옮겨 갔다.

두 사람은 부산의 한 초등학교 동기동창인데, 학교 다닐 때는 전혀 모르다 동기회에서 만나 늦게 결혼을 했다. 여자 친구는 학교 선생님이고, 남자친구는 동구 소재 모기업의 관리직이었다. 늦게 만난 탓에 다섯 살과 이제 10개월 된 두 아들이 있는, 누가 봐도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한 쌍이었다. 그런데 가장의 그것도 30대 젊은 가장의 뇌출혈은 부인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했다.

내 친구는 함께 있는 병실의 보호자들이 “부인 잘 만났다.” 할 정도로 늘 웃으면서 남편을 돌봤다. 오른쪽이 거의 마비되고 말도 못하는 남편이 시간은 걸릴지언정 열심히 노력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 견딜만 하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쓰러져 병원에 있는 동안, 꼭 해결해야 할 문제인 산재승인문제는 정말 힘들다고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병원노무사들을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 분들 말을 듣다보니 빨리 손을 써야 할 것 같고, 급한 마음에 이곳저곳 인터넷을 검색해가며 산재에 대한 상담도 받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결혼하고 6년 동안, 토·일요일은 물론 어린이날도 쉬지 못하고, 아이들과 한 번 놀아주지도 못하고, 당직근무를 하고, 집에 들어왔다가도 호출에 불려나가던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남편이 당연히 산재인정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회사는 미온적인 태도를 넘어, 6개월 안에 퇴사를 결정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이야기에 친구는 가슴이 무너졌다고 한다. 게다가 남편은 그렇게 누워있는데, 산재승인을 진행하기 위해서 착수금이 얼마고, 승인이 나면 승소비는 얼마고 등을 이야기하는 노무법인에게도 속상했다고 한다. “이런 하소연이라도 들어주는 네가 고맙다”는 친구와 시간을 내, 북구 비정규직센터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상담하시는 분께서 친구가 적어온 1년 가까운 남편의 근무일지를 보고,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사례의 경우는 바로 산재승인이 나기 어렵다. 소송까지 가야한다는 결심을 가지고 가족들이 대응해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것은 가족들이 결심하셔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 당해보는 너무 큰 일 앞에 궁금한 것도, 걱정도 많은 친구의 질문에 대해 한 시간이 넘도록 차분히 답해주었다. 그래도 결심이 안 되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해 달라며 내민 명함을 받고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동구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친구가, 자기는 나름대로 배울 만큼 배웠고, 문제가 생겨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막상 이런 일을 당하니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더라면서 특히 현장에서 일어나는 노동문제는 참 낯설고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동구에는 이런 곳이 없느냐고 했다.

동구에도 며칠 전 비정규직 노동자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노동자에 대한 법률지원, 상담을 비롯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차별해소와 법률지원 서비스를 담당하게 된다.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동구주민들의 바램으로 만들어져 문을 연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이기에 기대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동구에도 꼭 있었으면 좋겠다던 친구는 한동안 부산 친정에 아이들을 맡기고, 남편을 돌보겠지만, 그 친구가 돌아와 남편의 산재승인을 받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때, 동구비정규직 지원센터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남편이 다시 아이들을 안아주고 이야기할 정도로 건강해 질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 친구 부부의 산재문제가 잘 해결되어, 열심히 일하다 다친 노동자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이제 첫 걸음을 뗀 동구 비정규직지원센터가 동구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 외국인노동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박문옥

동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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