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의 집념
이상범의 집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3.05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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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자 연합뉴스는 “민주, 이석행 등 민노총 인사 입당”이란 뉴스를 신속히 타전했다. “이상범 前현대차 위원장 등 1천여명 동반 입당”이란 부제도 달았다.

같이 내보낸 당 대표실 사진에는 이상범 전 북구청장의 사진도 실렸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의 바로 왼쪽에는 이 전 북구청장이, 오른쪽에는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선 채로 손을 맞잡는 포즈를 취한 사진이었다. 체크무늬 양복에 갈색 목도리(머플러)를 두른 수수한 차림이었다.

이날 오후 “KTX 울산역에 막 내려 차를 잡고 있는 중”이란 이상범 전 청장과 전화로 대화를 나눴다. 전날 ‘당 지도부에 드리는 글’을 중앙당에 전하겠다고 밖으로 알린 사실이 기억나 그 뒷얘기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한명숙 대표를 만나 뵀는데 워낙 바쁜 시간이어서 그 이야긴 못 드렸지요. 대신 홍 아무갠가 하는 비서실장한테는 얘기를 전했는데 최고위원들을 포함해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는 북구의 후보자사무실에 도착한 즉시 중앙당에 다녀온 이야기를 담은 보도자료를 울산의 언론계에 내보냈다. “울산 북구 경선에 의한 야권후보단일화로 가닥”이란 부제를 “이석행 민주노총 전 위원장 민주당 입당”란 제목과 같이 단 자료였다.

“5일 국회에서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민주통합당 입당식에 함께 참석, 한명숙 당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와 만나 울산의 상황을 정리한 문건을 전달하고 울산 북구의 공천 발표를 조속히 해줄 것을 촉구했다.” “당 지도부는 울산 북구의 야권후보단일화 문제는 경선으로 정리될 것을 시사하면서 꼭 승리해달라는 당부를 했다.” “따라서 울산 북구는 통합진보당 김창현 예비후보측이 일관되게 주장한 양보에 의한 단일화 방식이 아닌 공정한 경선에 의한 단일화 방식으로 야권후보단일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현대자동차 초기 노조에 관여한 현장노동자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한 뒤 울산 북구청장까지 지낸 인간 이상범은 시쳇말로 ‘연구대상’이다. 그 첫째가 그의 새하얀 도화지 같은 인간성이다.

우스갯소리로, 정치인 이상범은 한마디로 ‘숙맥’이다. 그는 꾸밈을 모른다. 당연히 꼼수 부릴 줄도 모른다. 한동안 민주노동당에 몸담았으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당적의 정치인 손학규를 짝사랑하기 시작한다. 한나라당원에서 민주당원으로 변신한 손학규라면 ‘진보’라기보다는 ‘보수’에 가까운 인물인데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인간 손학규가 그에게는 존경을 바치고 싶은 ‘사부님’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상범 민주당 입당’ 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는 언젠가 기자회견장에서 “민주당 입당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한 어조로 부인했다. 부인을 되풀이했다. 억울한 심경이라고도 했다. 사실 정치인 이상범의 민주당 입당은 그 한참 후의 일로 드러난다.

두 번째 연구거리는 그의 지치지 않는 집념이다. 그의 집념은 이번 4·11 국회의원선거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큰 틀의 야권연대를 논하는 마당에서 울산 북구가 정치흥정(정치협상)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판단한 그는 중앙당을 상대로 투쟁(?)을 전개한다. ‘민주통합당 지도부에 드리는 글’을 벌써 두 번이나 써서 올렸다. 처음 쓴 서한 형식의 글은 그 분량이 장장 200자 원고지 60장을 넘었다.

그는 5일 당 지도부에 전달한 글에서 “왜 후보의 발을 묶어 두고 있는가?”하고 반문한다. “만나는 주민들마다 공천은 어떻게 됐느냐, 경선은 하게 되느냐 묻기만 합니다”, “이런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조치가 어디 있는지 화난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기성 정치인 시각에서 본다면 이상범, 그는 겁 없고 당돌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는 집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당의 지지도를 올려주는데 당이 오히려 고마워해야지, 내가 왜?”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또 지도부에 올린 글에서 “생떼에 대한 양보는 국민 기대에 대한 배신”,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면 밀실야합”, “나눠먹기식 단일화, 거센 후폭풍 각오해야”, “노동 분야에 대한 이중적 잣대 유감”이란 막말(?) 수준의 으름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고향(충북 보은 질고지)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지었다는 ‘질고지’라는 필명(이메일 아이디도 ‘jilgoji’다)을 늘 안경처럼 달고 다니는 인간 이상범은 논리정연하고 유려한 필체로도 정평이 나 있다. 연구거리가 하나 더 있다는 이야기다.

정치인 이상범이 그의 끈질긴 집념대로 ‘경선을 통한 야권후보 단일화’를 끝내 성사시키고 이번 선거에서 완주하게 될지는 아직 물음표에 속한다. 하지만 ‘똥배짱’ 같은 그의 집념 하나만은 알아줄 만하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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