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역사 ‘충숙공 이예’
잃어버린 역사 ‘충숙공 이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2.02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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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이 낳은 인물 충숙공 이예를 그린 소설이 125년 역사의 하출서방신서(河出書房新社)란 출판사에 의해 최근 일본에서 출판됐다. 도쿄 뉴오타니 호텔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300여명의 일본 문화·정계·재계 인사들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고, 특히 지한파로 알려진 하토야마 전 일본수상도 참석했다고 한다.

소설발간을 계기로, 뜻있는 일본인들이 ‘이예 계몽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등 일본 전국에 걸쳐 ‘이예’ 바람이 불고 잇다는 소식이다. 또 일본에서는 이번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며, 충숙공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한일합작으로 제작될 것이라고 한다.

최근 일본에서 충숙공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충숙공은 일본이 말하는 ‘조선통신사’의 원형이며 공을 통해 한일외교의 역사를 약 2백년 앞당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그 동안 ‘통신사’의 교환을 통한 양국의 외교관계는 임란 이후에 시작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대왕 당시에 이미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외교사절이 일본에 파견되었으며 충숙공도 이때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쇼군을 만났던 사실이 밝혀졌다. 둘째, 어려서 어머니를 왜구에 잃고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충숙공이 아전이라는 신분의 제약을 딛고 사대부로 입신했다는 점이 일본인들에게 정서적으로 큰 감동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충숙공은 오랜 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었으나, 2005년 2월에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되고 2010년에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로 선정됨으로써 그 삶과 업적이 조명되기 시작하였다.

울산은 조선 전기만 하더라도 경주부 관하의 일개 군에 불과하였으나 20세기말 개발경제와 함께 유수의 산업도시로 성장하여 지금의 광역시로 거듭났다. 그러나 울산은 문화적 기반이 취약하고 소위 ‘문자향(文字香)’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보의 시대를 넘어 문화의 시대라 할 21세기에 울산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고 더 알차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울산만의 독특한 문화를 키워나가야 한다. 문화역량을 키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건물이나 하드웨어가 아니라 바로 콘텐츠라 불리는 소프트웨어다.

그러나 콘텐츠는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한다. 콘텐츠를 새로 꾸며내는 데에는 돈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콘텐츠를 풍부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역사를 상품화하는 것이다. 역사는 이야기로 가득한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이다. 역사는 종종 따분하고 어렵게 인식되지만, ‘history’에서 앞의 ‘hi’를 빼면 흥미진진한 이야기(story)로 변신하게 된다.

울산은 우리나라 수출에 가장 중요한 품목인 조선 산업의 메카이다. 흔히 조선 산업은 정주영 전 회장의 리더십에 힘입어 불모지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인 1420년(세종 2년)에 태종·세종임금이 조선에 큰 관심을 갖고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왕조실록에 의하면, 당시 태종임금은 조선 선박의 성능이 일본에 뒤떨어져 있음을 알고 신하들에게 명하여 선박을 새로 건조하게 했다. 새 선박이 완성되었을 때 태종임금의 선박의 성능을 시험하면서 왜선과 우리 선박을 동시에 출발시켰는데, 우리 선박이 왜선보다 더 빨리 달리는 것을 확인하고 태종임금이 크게 기뻐해 공로자들에게 상을 내리셨다고 한다. 이때 조선선박에 타고 지휘했던 사람이 바로 충숙공 이예였다.

우리가 외교관으로만 알고 있는 충숙공 이예는 선박 운항의 전문가이기도 했다. 충숙공이 40여회에 걸쳐 일본에 파견되고 특히 지금의 오키나와까지 파견되었던 외교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가 선박의 전문가이었음을 짐작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왕조실록에 나타난 이런 사실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기 약 200년 전의 일이다. 임진왜란에서 우리 수군이 거둔 승리의 원동력이었던 거북선이 만들어진 이면에 이와 같이 해양을 중시하는 태종·세종임금의 혜안과 충숙공의 기여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와 같이 충숙공에 얽힌 역사(history)로부터 이야기(story)를 끌어내어 활용한다면, 울산의 산업을 국내 및 해외에 홍보하고 그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작으나마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내다보며 울산의 문화역량을 키우기 위해, 울산 시민들이 충숙공의 이야기를 적극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명훈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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