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 전체 촘촘한 주름 쪼아서 새긴 형태감 압권
몸통 전체 촘촘한 주름 쪼아서 새긴 형태감 압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1.08 1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암각화 왼쪽 아래 암면에 위치한 ‘대왕고래’ 형상
꼬리쪽 V자형 벤자리·주름 갯수 등 특징 고스란히
대곡리 암각화 속에 그려진 대부분의 고래들은 머리가 위로 향하도록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암면의 왼쪽 아래에는 특이하게도 그 머리가 밑으로 향하도록 배치된 고래가 한 마리 그려져 있다. 이 고래 형상에서는 입의 생김새, 분기공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 그리고 등지느러미 등은 보이지 않지만, 그 대신에 몸통 전체에 길고 짧은 주름들이 촘촘히 나 있음을 살필 수 있다.

대곡리의 화가는 이 고래의 주름을 표현하기 위하여 선 쪼기와 면 쪼기를 혼용하였다. 가슴지느러미는 한 쪽만 그려져 있지만, 다른 고래들과 대비되는 방향감, 가운데 소위 ‘V’자형의 벤 자리와 함께 크고 넓적한 꼬리지느러미, 좌우대칭으로 균형감 있는 몸통과 그 속에 새겨진 주름 그리고 깊고 분명하게 쪼아서 그린 당당한 형태감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주위의 다른 형상들을 압도한다.

이 형상이 어떤 종의 고래를 그려놓은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단서는 배에 새겨진 주름의 수와 그 길이, 가슴 및 꼬리지느러미의 생김새 등이다. 물론 가슴과 배에 난 주름들로써 이 고래가 수염고래 아목 중의 어떤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슴지느러미나 꼬리지느러미 그리고 배에 새겨진 주름 등으로써 그것이 수염고래 중의 어떤 것을 형상화 하였는지 구분해 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어떤 종의 고래를 형상화한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겉으로 드러난 특징, 즉 가슴과 꼬리지느러미 그리고 배에 나 있는 주름 등을 분석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수염 고래 중 우선 대왕고래를 살펴보면, 가슴지느러미는 길고 얇으며 끝이 뾰족하다. 꼬리지느러미는 넓은 삼각형인데 가운데 ‘V’자형의 벤 자리가 있고 또 배에는 아래턱에서 배꼽 사이에 55~68개 사이의 주름이 있다. 참고래는 그 가슴지느러미의 길이가 짧고 또 폭은 좁다. 꼬리지느러미는 대왕고래와 마찬가지로 가운데 벤 자리가 있는 삼각형이다. 아래턱에서 배꼽에 이르기까지 56~100개의 주름이 있다.

보리고래의 경우는 32~60여개의 주름이 있지만, 그것의 길이는 가슴과 배꼽의 중간부분까지 이어져 있다. 브라이드고래는 45개 정도의 주름이 배꼽까지 이어져 있다. 밍크고래는 60여개의 주름이 있지만, 그 끝이 배꼽에 이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혹등고래는 긴 가슴지느러미와 더불어 아래턱에서 배꼽 혹은 그 뒤까지 약 14~35개의 폭이 넓은 주름이 나 있다. 북방긴수염고래는 배에 주름이 없고 또 가슴지느러미가 넓적하다. 귀신고래는 배에 주름이 없는 대신에 길이가 1~2m인 홈이 2~5개 정도 나 있다.

수염고래 아목의 각 종별 특징들을 통해서 볼 때, 보리고래나 밍크고래, 북방긴수염고래 그리고 귀신고래 등은 배에 나 있는 주름의 길이나 그것이 있고 없고 등에서 분석 대상의 고래와 큰 차이를 보인다. 혹등고래의 경우는 주름의 수나 길이 등이 그림 속의 형상과 유사하지만, 가슴지느러미의 길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귀신고래는 배의 주름 대신에 길지 않은 홈이 나 있음을 살펴보았다. 주름이 배꼽 또는 그 뒤까지 나 있는 것은 대왕고래와 참고래 그리고 브라이드고래 등인데, 브라이드고래의 가슴지느러미는 그 뿌리가 좁고 중간 부분이 발달하였다. 참고래는 가슴지느러미가 대왕고래에 비해 짧고 또 폭이 좁다.

이 형상에서 가슴지느러미는 몸통 길이의 약 1/7에 이를 정도이다. 그러니까 이 고래의 길이가 16m라고 가정을 하면, 가슴지느러미의 길이는 약 2.3m에 이르며, 25m라고 가정할 경우 3.6미터에 이르는 크기를 갖는 셈이다. 따라서 가슴지느러미의 생김새를 놓고 보면, 이 형상은 대왕고래에 가깝다. 다만, 배에 난 주름의 수는 암각화 속의 그것과 큰 차이가 있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60개 전후의 주름을 쪼아서 그리는 일은 어려웠을 것이며, 따라서 그림과 같이 몇 개의 길고 짧은 선으로 촘촘한 주름을 형상화하였다.

대곡리 암각화 속에서 이 고래 형상과 외형적으로 유사한 몸통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이 또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몸통에 작살이 그려진 고래 오른편에 있는 작은 고래이다. 이 형상의 가슴지느러미는 몸통의 약 1/3지점에 나 있고, 그것의 길이는 몸통 전체의 약 1/7 정도이다. 또 몸통 전체에서 가슴지느러미가 난 부분이 가장 발달하였으며, 꼬리로 가면서 급속히 가늘어지는 신체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 암각화에는 거대한 가슴지느러미가 달린 고래 세 마리가 확인되고 있다. 하나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 있는 대왕고래, 즉 배에 주름이 잔뜩 그려진 고래의 왼쪽에 가로로 그려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암면의 중간 아래 부분에 그려져 있으며, 몸통에는 21개의 점들이 새겨져 있다. 나머지 하나는 암면 중간 위쪽의 오른편에 그려진 것이다. 이들 세 마리는 모두 거대한 가슴지느러미가 달려있다. 고래 가운데 가슴지느러미가 몸통 길이의 1/3에 이르는 것은 단 하나 혹등고래뿐이다. 그런데 이 세 마리의 고래는 모두 신체 길이의 약 1/3에 해당하는 긴 가슴지느러미를 갖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셋 중의 두 번째를 사슴과의 동물로 보기도 한다. 아마도 그렇게 본 이유는 몸통의 아래쪽에 그려진 긴 두 개의 가슴지느러미와 몸통 가운데 새겨진 점들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이 형상의 가슴지느러미는 마치 초식동물의 다리처럼 길게 그려져 있다. 그밖에도 꼬리자루에서 꼬리지느러미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윤곽선을 동물의 목과 머리로 파악하였다. 연구자 중에는 특히 이 고래형상의 몸통 가운데 찍혀 있는 21개의 점들을 꽃사슴의 무늬로 파악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 형상을 꽃사슴으로 본 것은 대곡리 선사 시대 화가들의 캐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단순하게 형상들을 해석하고자 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암각화에서 육지동물들은 모두 두 개의 귀가 있고, 또 동물의 엉덩이에서 뒷다리로 이어지는 형태적 특징, 즉 윤곽은 거의 수직선을 이루거나 혹은 그 다리가 앞뒤로 약간 기울어지는 특징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조형성 속에서 이 암각화를 제작한 집단들의 육지동물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대곡리 암각화의 양식적 불문율을 엿볼 수 있다.

거꾸로 그려진 대왕고래의 오른쪽에는 턱 부분에 세 개의 짧은 줄무늬가 새겨진 고래 한 마리가 배치되어 있다. 수염고래 아목의 고래들은 그 주름이 아래턱에서 배꼽 전후까지 이어져 있으나 귀신고래만은 배에 주름 대신에 다섯 개의 홈이 나 있으며, 그 길이도 또한 1~2m 정도로 짧다고 한다. 그런데 이 형상을 살펴보면, 아래턱 부분의 주름이 가슴지느러미 가까이까지 나 있다. 이러한 점들을 놓고 볼 때, 이 형상은 귀신고래를 나타낸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유사한 몸통구조를 띠고 있는 것이 암면 중간 부분에 타원형으로 그려진 고래형상이다. 이 형상의 좌우에는 각각 펭귄이 유영하고 있다. 이 고래 형상에서는 다른 형상들처럼 배에 나 있는 주름이나 홈도 보이지 않고, 또 입이나 등지느러미의 생김새도 살필 수 없으며, 가슴지느러미에서도 어떠한 특이점을 살필 수 없다. 거대한 몸통에 가슴지느러미 둘만 좌우에 새겨져 있고, 꼬리지느러미마저 불분명하게 새겨져 있다. 전체적인 몸통 구조를 놓고 볼 때, 그것은 앞에서 살펴 본 귀신고래와 유사하기 때문에 이 형상 역시 같은 종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