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즐거움
앎의 즐거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1.04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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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출판사는 1884년 서울에서 문을 연 광인사(廣印社)였다. 일명 광인국(廣印局)이라고도 불렸으며 인쇄소를 겸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수입한 납활자〔鉛活字〕로 된 한글 자모와 한자 자모를 갖추고, 판화(版畵)도 인쇄할 수 있었는데 맨 처음에 펴낸 책이 《충효경집주합벽(忠孝經集註合璧)》이었다.

그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나라 민간 출판사의 역사도 어언 120여년에 이른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동서문화사도 그 출판문화의 역사 속에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앎의 즐거움’을 출판지표로 삼아, 1956년 설립된 동서문화사는 세네카의 《지혜와 사랑》을 시작으로 총류·인문사회과학·예술·아동도서 등 지금까지 3,000여 종의 책을 펴내, 우리나라 출판문화 향상에 기여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필자가 1990년부터 동서문화사에 몸담으며 출판의 열정을 불태운 <세계대백과사전(전31권)>의 완간은 투입된 자금이나 인원 및 소요 기간 그리고 방대한 자료를 감안할 때 참으로 엄청난 대역사(大役事)가 아닐 수 없었다. 이처럼 필자는 젊은 시절 고향 울산을 떠나 서울에 발을 내디딘 이후 오로지 출판편집의 외길을 걸어 왔다.

하루의 일과를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시작하는 필자의 머릿속에는 늘 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끊이질 않는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습득한 지식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삶의 기초자료였다면 출판사에 몸담으며 수백 권의 반듯한 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접했던 숱한 옥고(玉稿)와 수많은 자료들은 곧 나의 스승이자 삶의 길잡이였다. 이처럼 필자는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의 대부분을 책을 통해 습득해 왔기에 가족이나 친지, 이웃 또는 지인들에게도 다소 진부할진 모르나 늘 독서의 필요성과 책의 소중함을 거듭 강조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해가 거듭할수록 종이책의 판매가 부진하고 독서인구가 줄어든다는 우울한 소식은 출판계 종사자들의 의욕을 서서히 앗아가고 있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년을 ‘독서의 해’로 지정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전 국민이 함께하는 참여형 독서장려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국민의 독서력 향상과 국가 지식경쟁력을 제고하겠다는 계획이 수립되어 있다고 한다. 독서는 우리나라가 지식경제국가로 도약하는 데 중요한 문화활동임에도 갈수록 독서열기가 식어가므로 정부 차원에서 발 벗고 나선 모양이다. 영국은 1998년과 2008년, 일본은 2010년에 이미 ‘국민독서의 해’를 펼쳐 큰 성과를 거둔 바 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국민 행복지수 상승 및 국가 경쟁력 강화에 무엇보다도 ‘독서’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1997년 이후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반도체가 10년 동안 벌어들인 수출 총액이 231조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같은 기간, 영국의 소설가 조앤 K.롤링이 쓴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가 책·영화·캐릭터 상품으로 번 돈이 308조원이라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작가의 상상력이 산업 하나를 웃도는 부가가치를 창출한 셈이다. 국가 경쟁력을 이끄는 ‘창의 산업(Creative Industry)’의 원천이 바로 독서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 보도된 ‘베스트셀러 쏠림 현상’은 우리에게 많은 걱정거리를 안겨 주고 있다. 한 대형서점이 집계한 판매 보고서에 따르면 책 판매가 갈수록 인기 도서에만 집중되며 몇몇 저자들의 매체 파워가 너무 세지고, 이슈가 된 책만이 싹쓸이를 한다는 것이다. 즉, 독서 인구는 줄고 있지만 거꾸로 ‘잘 팔리는 책들’의 판매 성적은 크게 늘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많이 팔리지는 않아도 꼭 출간돼야 할 책’이나 ‘적게 팔려도 좋으니까 꾸준히 발간돼야 할 책’이 갈수록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이다.

인문·사회·철학 교양서나 과학서적 가운데에는 책방에 내놓지도 못하고 물류 창고에 쌓였다 반품되는 책도 많다고 한다. ‘베스트셀러 쏠림 현상’이 책을 만드는 숲을 망치고 지식의 다양성을 황폐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좋은 책은 몸을 치장하는 귀금속이나 액세서리도 아니요 오로지 우리의 정신을 맑고 풍요롭게 해 주는 삶의 길잡이인 것이다. 적어도 독서에서 만큼은 ‘남이 장에 가니 거름지고 장에 간다’는 식이 아닌 자신만의 올바른 독서 기준을 세워 다양한 지식을 골고루 습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2012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독서를 통한 ‘앎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으면 한다.

< 김부조 동서문화사 편집부장·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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