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 뜬 龍의 알
우물에 뜬 龍의 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1.0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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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든가 화랑에서 김창렬의 물방울 그림을 보고 한 동안 갖고 싶어 했으나 대개 대작이라 입수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니 작가의 해설처럼 무상(無常)하여 그 감정은 물처럼 흘러가 버렸다.

신화적 인물로서 유화부인, 알영, 용녀 등이 물과 관련된다. 물은 사람을 살리는 재생 기능을 한다. 바리공주 신화에 보면 아픈 부모를 구하기 위해 서역국(西域國)으로 가서 생명의 약수를 가져와 부모를 살려 내는 이 약수는 죽음의 제의(祭儀)를 통과해야 얻는 상징물이 아닐까.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 고구려 건국신화의 주인공인 동명왕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柳花)부인은 강의 신 하백(河伯)의 딸로서 웅심연(熊心淵)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신라의 첫 번째 왕인 박혁거세의 비 역시 알영정(閼英井)이라는 우물 출신이다. 물에는 생명과 정화, 그리고 부정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 김열규는 물의 여성인 왕비에서 물할미 신앙을 낳았다고 하면서 물할미는 물의 생명력 자체를 상징하며, 삼신할미 신앙과 함께 한다. 물할미는 곳곳에서 자신이 가진 권능으로 악을 쫓는 지역의 수호신이면서 약수(藥水)신앙과 연결되어 섬김을 받는다고 한다.

샘이나 약수 등에 담겨진 재생력과 생명력은 물이 곧 용의 집이며 정기(精氣)로 간주하는 용 신앙을 만들게 된 지도 모를 일이다.

물의 철학자 탈레스(Thales B.C. 6세기)는 세상 만물의 근원은 물의 증발을 통해 영양분을 얻는 살아 있는 유기체라고 하면서 오늘 흐르는 계곡의 물은 내일의 물과는 다르다고 했다.

울산대공원내 산책로에 박아 둔 동판에는 한 마리 용의 몸체에서 발가락이 4개와 5개가 보인다. 신기했다. 아무리 상상의 동물이라지만 한 몸에서 나온 발가락이 다를 수 있을까.

동국이상국집에는 용의 발가락 수를 5개라고 한다. 천제(하느님)의 아들 해모수가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올 때 5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五龍車)를 타고 왔다고 했다. 흔히 황제국을 표현할 경우엔 용의 발가락은 5개, 제후국은 4개 그리고 일본의 용은 3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조선의 제26대 왕으로서 대한제국 초대 황제(1863~1907년 재위)로 등극한 고종(高宗)의 용포(龍袍)에는 발가락이 5개 달려야 마땅하다. 아무렴 한 몸체에서 발가락 수가 다르게 표현된 것은 처음 봤다. 탈레스가 모든 물체에는 신이 가득하다고 믿었으니, 본 적이 없는 상상동물의 발가락 개수쯤이야 다름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우리의 고유어로서 미르(龍)는 용을 가리킨다. 훈몽자회(訓蒙字會)에 미르 용이 나오는데 물에 사는 수신(水神)으로서 물의 어원을 지닌다. 만물의 근원인 물이 솟아나는 우물은 풍요의 의례나 주술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지닌 곳을 명당이라 친다. 배산은 등쪽, 즉 뒤의 산이니 뒤는 북쪽이고, 북은 만물이 귀천(歸天)할 곳이다. 하늘에서 내린 물은 배산에서 받아 모우니 이곳이 곳 생명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옛 사람들은 대보름날 마을에선 우물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그 물속에 비치는 달그림자를 제일 먼저 보는 사람은 행운이 따른다고 하면서, 물속에 둥그렇게 떠 있는 달을 용의 알이라 믿어왔기에 아이를 소망하는 여인들은 이 물을 떠 마셨다고 한다.

용을 두고 민간에서 이르기를 비를 가져오는 우사(雨師)이고,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주는 벽사의 선신(善神)으로 섬겨오고 있다. 농경민족인 우리는 물과 친한 용에게 긴 세월 동안 용왕제, 용신제, 용왕굿을 올리면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기도 한다.

영남알프스 간월산은 용추폭포를 품고 있다. 올해는 임진년(壬辰年) 용의 해, 이 해도 쉼 없는 멋진 기운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우렁찬 용수의 기운을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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