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뽀가 밉지 않은 까닭은?
무대뽀가 밉지 않은 까닭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4.2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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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뽀는 경상도 사투리의 하나이다. 욕심이 생기면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붙여 어떤 일을 저질러 벌이고, 약간은 고집까지 있는 사람을 말할 때, ‘저 사람은 무대뽀야’라고 한다. 여기 앞·뒤를 가리지 않는 다는 것은 법이고 뭐고 없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일설에는 무철포(無鐵砲)의 일본식 발음이 우리말과 섞여 사투리가 된 것이라고 한다. 무대뽀와 더불어 거의 사투리처럼 쓰이는 조직 폭력배의 ‘나와 바리’라는 말도 사실은 일본말이다. 그래서 ‘친구’ 다음에 나오는 폭력 영화의 대부분이 나와 바리(관할구역)를 놓고 무대뽀로 행동을 저질러버리는 장면들이다. 한자어의 무철포는 철포(총)도 챙기지 않고(없을 무) 무조건 싸우겠다는 급한 성질 하나만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처럼 무모(無謀)하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하여간 무대뽀는 무대뽀로 대응하는 것이 하나의 상책이 될 수 있다.

오래전에 미국의 TV시리즈 중에 ‘해결사(tranquilizer)라는 것이 있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원(怨)을 풀어주는, 피해자의 화 난 마음, 속 터지는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일을 무보수로 해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범인을 찾아 보복을 해주는 일이다. 강간범이 변호사를 잘 써서 무죄로 석방되면 강간범을 찾아 피해자, 또는 피해자 부모가 몰래 보고 있는 데서 혼찌검을 내주는 식이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대뽀로 속 풀이를 해주니까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으로 시청률이 높았었다. 엊그제 법의 날에 문득 떠올랐던 생각이다.

울산에서 무대뽀한테 당하는 억울한 일은 너무 많다. 나이가 20년이나 차이가 나는, 아버지뻘 되는 어른한테 ‘당신이…’라고 하지 않나, 그러면서 ‘당신’은 존칭어라고 우기는 국어교사 출신의 무대뽀는 기가 막힐 정도다. 3차선에서 1차선으로 한 번에 위험하게 끼어들어 경적을 울리니까, 차를 급정거하고, 내려서 ‘당신이 뭔데?’하면서 ‘O발놈의 영감태기’한다. 이른 봄, 산불조심 강조기간에 척과 가는 길가에 담배꽁초를 버려서 경적을 울렸더니, 차를 세우고, ‘와? 할 일 없능교?’한다. 목욕탕 습식 사우나 실에서 가래침을 바닥에 뱉어서 ‘입장 바꿔 생각해봅시다’했더니, ‘공중도덕 다 지키는 사람 어디 있능교?’하며 더 큰 소리로 외친다. 무대뽀의 전시장 같다. 해결사가 아쉬워지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런 무대뽀는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은 화가 나더라도 뒤통수는 맞지 않는다. 앞에서 웃어주고 뒤에서 골탕 먹이는 성격장애자의 행동처럼 법을 잘 지키는데 그것이 교묘하게 법을 악용하는 것이라면 해결사도 어쩔 도리가 없다. 자기 아버지가 특정 종교에서 일한다고 광고하여 자신도 그 종교에서 기대하는 착한 사람으로 믿도록 유도하고, 그 덕으로 위선적인 행동에, 악덕 지성인 행세를 하는 미꾸라지가 있다. 무대뽀처럼 행동이 겉으로 나타나야 화라도 낼 텐데 진흙탕에 숨어 있어서 해결사가 나타나도 어떻게 혼내주지를 못한다. 착하게 보이는 겉모습만으로 이런 사람을 놓고 우리들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무대뽀는 지나치면 법으로 다스릴 수 있으나 미꾸라지는 법망(法網)을 빠져 나간다. 법은 이런 사람이 잔꾀로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세분화 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대우 받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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