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마지막 성탄절에 세워진 한국 교회사 근원지
19세기 마지막 성탄절에 세워진 한국 교회사 근원지
  • 강귀일 기자
  • 승인 2011.12.2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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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12월 25일 김재영 장로 교회 설립
호주 출신 예원배 선교사 13년간 이끌어
목사 43명 배출·이상주 총장 조부모 인연
내고장 예배당 순례 <5>울주군 은편교회
“마음의 눈을 밝혀서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것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성탄절을 나흘 앞둔 21일 저녁 수요기도회에서 은편교회 김상철 목사가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했다. 범서에서 허고개를 넘어 두동로를 따라 가다 보면 연화산 아래에 자리 잡은 은편교회가 보인다.

이 교회가 맞는 성탄절의 의미는 특별하다. 19세기 마지막 성탄절인 1899년 12월 25일에 이 교회가 설립됐기 때문이다.

두동 두서 지역에는 오래된 교회들이 유난히 많다. 천전교회가 1902년, 월평교회가 1910년, 전읍교회가 1913년에 설립됐다. 성산교회, 화전교회, 구미교회 등도 세워진지 50년이 훨씬 넘었다. 은편교회는 이 교회들의 큰 집이다. 은편교회에서 싹을 틔운 복음의 열매가 인근 마을로 번져 나갔기 때문이다.

설립자인 김재영 장로(1871~1941)는 철제 농기구 원재료인 쇠부리 장사를 하며 대구를 왕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대구에서 안의와(James Edward Adams·1867~1929) 선교사를 방문해 기독교 교리를 듣고 기독교인이 됐다. 김 장로는 가족들을 설득하고 이웃에게 전도해 신자 수십 명을 얻게 되자 교회를 설립했다. 처음 예배당은 밤골에 세웠고 구미리와 원리로 옮겼다가 1954년에 지금의 자리에 새 예배당을 세웠다.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 선교회의 예원배(Albert Clement Wright·1880~1971) 선교사는 1929년부터 1941년까지 이 교회를 돌봤다.

예 선교사는 당시로서는 귀했던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며 부산과 경남 지방의 교회들을 순회하며 인도했다. 그의 포드자동차는 경상남도에 제1호로 등록된 것이었다. 은편교회의 초기 성도들은 예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고 직분 장립을 받았다.

이 교회에는 아직 종탑이 남아 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종을 쳤다고 한다. 그러나 인근에 교대근무자들이 늘어나면서 타종을 멈췄다고 한다.

이 종은 해방 직후 주문제작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종을 공출당한 교인들은 해방이 되자 종부터 다시 만들어 달았다. 새 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 교인들이 느꼈을 감격은 짐작이 간다.

2009년에 이 교회 출신 출향성도들은 힘을 모아 ‘은편교회 110년사’를 출간했다. 박상호 목사(74)가 편집을 맡았다.

박 목사는 김재영 장로의 뒤를 이어 이 교회를 이끈 이근수 장로의 외손자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 교회를 다녔다. 두동과 범서를 연결하는 허고개라는 지명은 신라 경순왕과 관련된 설화에서 유래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박 목사가 말하는 것은 달랐다.

박 목사는 “옛 어른들이 새벽 4시에 출발해 40리 길을 걸어 울산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이 고개를 넘다보면 허기가 져 허고개라 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첩첩산중이던 이 마을에 일찍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일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또 ”일제강점기의 은편교회 교인들은 일찍 개명해 창씨개명 정책에도 불응했다“고 한다.

‘은편교회 110년사’에는 옛 당회록 사본을 비롯해 역대 세례자와 직분자들의 명단이 실려 있다. 이 교회 출신 목사 43명의 사진도 실려 있다. 이 교회 출신 성도들의 자손까지 포함한 것이다.

그리고 이 교회의 신앙계보도 소개돼 있다. 초기 교인들의 후손들이 전국 각지와 해외의 교회에서 목사, 장로, 권사, 집사로 신앙생활을 이어 가고 있는 현황을 정리한 자료다.

그 가운데는 울산대 총장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지낸 이상주 씨도 포함돼 있다. 이 전 부총리의 조부 이준필 씨가 이 교회 출신이고 조모인 백운곡 전도사는 경주 건천제일교회를 설립했다. 울산제일교회의 강무봉 장로와 병영교회의 강일복 장로, 언양제일교회의 김도헌 장로도 이 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부산에는 이교회 출신 성도들의 모임인 은신회가 조직돼 있기도 하다.

지금은 매주일 김경수 장로를 비롯한 30여 명의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교인들은 주로 인근 주민들이지만 구영, 천상, 무거동에서 오는 사람도 있다. 한국 교회사의 근원이 되는 이 교회는 오는 성탄절에 설립 112주년을 맞는다.

강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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