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운 벌, 무관심
가장 무서운 벌, 무관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4.24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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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모두 잘 났다고 ‘내다’ 하는 직장에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여러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직장에서 좋아하는 사람, 이름을 쓰라고 했더니 약 90%가 A의 이름을 썼다. 어떻게 저런 인기(?)를 갖고 있을 수 있을까? 호기심 반, 부러움 반으로 한동안 관찰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A와 더불어 몇몇이 새잡기(고도리) 화투를 쳤다. 이들 패거리 중의 한 사람은 유난하게도 남이 화투 패를 잘 못 내놓았다, 잘 내놓았다며 잔소리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서로가 잘 했다, 잘 못 했다 시비가 벌어지곤 했다. 이런 판국에도 A는 판정을 내려주지 않고 가만히 웃으며 보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었다가 시비가 그리로 옮겨가기도 했다. A는 한 번도 이런 시비에 말려들지 않았다. 작은 고도리 판에서 필자가 A의 진짜 속마음을 훔쳐본 것이다. A가 무관심으로 벌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다 알고 있는 필자에게, ‘재미로 치는 놀이라고 타이르고, 고도리의 이치로 따져 가르치고, 때로는 혼을 내서라도 고쳐질 가능성이 보이면 한 마디 해주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이다’고 귀띔했다.

그래서 그는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 잔소리꾼, 시비꾼은 지금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A처럼 둘레 사람들이 똑같은 무관심으로 대응하지 않았으면 그 버릇을 고쳤을 수도 있었다. 이것을 심리학, 학습심리학, 구체적으로 행동수정 이론(行動修正 理論)에서는 둘레 사람들의 대응이 그 잔소리꾼에게는 일종의 관심이 되고, 이 관심이 보상으로 주어지는 강화(强化)기능을 했다고 본다. 따라서 무관심은 벌이 되는 것이다.

전직 모 대통령이 언론으로부터 일주일이 멀다고 비판을 받았다. 심리학적 이론으로 보면, 언론이 관심을 보여주어 그로 하여금 강화 받게 해준 셈이다.

이런 강화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에게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된다. 강화 받을 일이 없으면 스스로 기사거리를 만들어 매스컴에 등장한다.

우리들 일상생활에도 강화를 받아 학습된 것으로 가늠할 수 있는 일들이 종종 관찰된다. 부부 사이에도 남편이 퇴근하여 양복저고리를 소파에 던져 놓는다고 부인이 잔소리를 하면, 이것은 일종의 부인으로부터의 관심이고, 보상이다. 따라서 강화 받았으니 다음 날도, 다음 날도 양복저고리를 계속 소파에 던져 놓는다. 반대로 부인이 미장원을 다녀와 헤어스타일이 바뀌었는데 퇴근한 남편이 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즉 ‘어, 당신 헤어스타일이 바뀌었네’ 라고도 하지 않고, 무관심으로 밥만 먹는다면 다음 날 반찬은 소금과 냉수 밖에 없을 것이다. 벌을 내리는 것이다.

학교에서 습관적으로(학습이 되어서) 주의집중을 하지 않는 학생에게 담임선생님이 매번 이름을 불러 잔소리를 하면 그 학생은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담임선생님의 관심에 강화를 받아 계속 창밖을 보거나 다른 아이들을 집적거릴 것이다.

이런 학생, 이런 회사, 이런 정부에 대한 최상의 개선책은 행동수정 방식으로 무관심해버리는 벌을 내려주는 것이다.

관심을 보이면 강화를 받아 나쁜 행동을 계속할 것이다. 사회의 진화이론도 이와 마찬가지로 발전한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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